인터넷에 빠지는 이유는 뭘까? - 청소년 인터넷 중독
"보건복지부는 '아동 청소년 인터넷 중독 해소 정책'에서 2011년부터 매년 초등 4년, 중등 1년, 고등 1년 등 3개 학년에서 정기 진단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 현재 우리나라 9~19세 사이 아동 청소년의 약 2.3퍼센트인 16만 8,000여 명은 치료가 필요한 고위험군이며, 약 12퍼센트인 86만 700여 명은 상담이 필요한 잠재 위험군으로 추정된다. 또, 아동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으로 인한 학습 부진·생산력 저하 등 직·간접적인 사회 손실액이 매년 최대 2조 2,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말 인터넷 중독은 이렇게 무섭고 대단한 것일까? 무려 100만 명에 가까운 어린이와 청소년이 중독자란 말인가? 게임이나 SNS를 오랫동안 한다고 엄마에게 혼나기도 하고 가끔은 PC방에서 사는 것 같은 친구는 보았지만, 10명에 1명꼴로 상담이 필요한 수준이라는 말은 당사자인 청소년들조차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 같다.
인터넷 중독이라는 개념이 수립된 10년 전부터 인터넷 중독을 연구하고 상담하는 내 입장에서도 다소 의아한 결과다. 물론 게임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거나 공부를 못하거나 가출하거나 금전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정말 그렇게 많은지는 의문스럽다.
인터넷 중독이 가능할까?
인터넷 중독은 '인터넷을 과도하게 탐닉하는 것을 조절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발생하는 상황'으로 정의할 수 있다. 앞에서도 중독에 대해 말했듯, 섭취할 수 있는 물질이 아니라 반복적인 행동에 탐닉할 때에도 중독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도박 중독이나 쇼핑 중독이 대표적인 예다. 지금까지 도박 중독, 방화광처럼 반복적인 행동을 하면서 자기 조절이 어려운 상태는 정신건강의학과적 진단 분류1)에서는 크게 충동 조절 장애2)에 포함되었다. 즉, 근본적으로 충동이 조절되지 못해 생기는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중독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연구한 결과, 도박 중독에 빠진 사람들이 큰돈을 따서 쾌감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와 생리적 변화가 마약을 복용할 때와 똑같았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독이라는 범주에서도 술, 담배, 마약과 같은 화학 물질 중독과 인터넷, 도박, 쇼핑, 방화, 폭식과 같은 특정한 행동에 탐닉하는 행위 중독(behavioral addiction)으로 나누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나 또한 이러한 분류에 찬성한다.
그런데 인터넷 중독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 중독을 치료할 때, 알코올 중독이라면 술을 끊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인터넷에 중독되었다고 해서 인터넷을 끊고 살 수는 없다. 이때는 완전한 중지가 아니라 '조절'이 치료의 목표가 된다. 인터넷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어디에서부터 병리 현상이고 어디까지 정상인지 구별하기도 쉽지 않다.
사용하는 양으로만 본다면 게임 개발자나 인터넷 업체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중독자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설문지를 돌려서 몇 점 이상이면 무조건 중독이라고 말하기에는 '중독'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가 만만치 않다. 그보다는 삶의 중심에 게임 혹은 인터넷 사용이 자리 잡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넷 사용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 90퍼센트 이상이 게임 때문인지라 게임 중독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어떤 게임을 하는지, 왜 하는지, 얼마나 중요한지 평가해야 한다.
증상에 가려진 근본 원인들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이 과도하게 인터넷을 사용하는 데에는 1차적으로 다른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까지는 주의력 결핍과 산만함이 게임에 몰입하는 원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산만하면 게임도 못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뇌의 메커니즘을 곰곰이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주의력이 결핍되어 부주의하고 산만한 경우, 적극적으로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책을 읽거나 문제를 푸는 일에 능동적으로 집중하기가 어려워서 금방 지치거나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린다. 그런데 TV나 게임은 그 주어지는 자극을 받아치는 정도의 수동적인 주의력만 필요하므로 훨씬 수월하게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다.
평소 집중이 안 되어 산만한 사람이라면 자극에 집중할 수 있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평소 잘 집중하던 사람은 게임을 하더라도 금방 피곤해하거나 질려서 그만두는 데 비해, 산만한 아이는 훨씬 오랜 시간 지속할 수 있다.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집중력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를 보상 결핍 이론(reward deficiency theory)이라고 한다. 주의력이 결핍된 사람에게 보상으로 자극을 던져 주기 때문에 결핍된 부분이 보상되므로 그 행동이 더욱 강화된다. 그러므로 산만하고 부주의한 면을 치료하면 게임에 탐닉할 이유가 줄어들기 때문에 자연스레 인터넷을 사용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또 다른 원인은 우울증이나 현실에서의 자존감 저하다. 10대 중반의 청소년부터 20대 초반의 청년들까지 인터넷에 중독되는 가장 흔한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현실의 삶이 우울하고 대인관계에서 상처받고 무슨 일을 해도 자신이 없고 스스로가 보잘것없게 느껴질 때, 사이버 공간이 오라고 손짓한다. 그곳에서는 동호회 사람들이 따뜻하게 맞아 주고, 같은 길드의 게이머들은 함께 사냥을 나가자며 이끈다.
현실에서는 꼴찌에 가까운 등수에 제대로 하는 운동 하나 없지만, 게임의 세계에서는 마법사이고 전사다. 몇 개의 아이템만 나눠 주어도 사람들은 너무나 고마워하고, 던전을 푸는 비밀을 알려 주면 어려운 영어 문장을 해석했을 때보다 100배는 칭찬한다. 자신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우울감은 모두 사라진다. 내일 해야 할 숙제도, 학원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일이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면 현실 세계는 상대적으로 더욱 재미없는 곳이 된다.
실제로 게임에 탐닉하고 있는 10대나 20대 학생들을 만나 보면 현실의 삶이 보잘것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게임 능력이 쌓이거나 파워 블로거나 논객으로 활동하며 영향력이 커질수록, 현실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진다. 머리로는 현실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사이버 공간의 삶이 풍요롭고 관계가 다채로울수록 현실의 삶은 외롭고 보잘것없고 고독할 뿐이다.
임상 경험상, 심각한 인터넷 중독인 10명 중 7~8명은 분명 이런 문제를 안고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사회 공포증, 학습 문제, 가정과 환경의 문제로부터 도피하려는 1차적인 원인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무조건 게임을 못하게 하거나 인터넷 사용 시간을 줄이게 하기보다는 먼저 '현실의 무엇 때문에 인터넷의 세계에 오래 머무는지'를 찾아내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단계적으로 빠져나오기
원인을 발견하면 이를 해결해야 한다. 바람이 가득 들어 있는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듯, 인터넷 사용만 막으면 결국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다. 근본적인 원인을 치유하고 나면 자연히 인터넷을 찾을 이유는 사라진다. 그 후에는 현실에서 대체할 만한 활동을 찾아내고 그 시간을 늘려야 한다. 무조건 나쁘다고 막기보다는 더욱 바람직하고 즐거운 활동을 찾아내서 서서히 대체하도록 유도한다. 운동하는 시간을 늘리거나, 평소 연주하고 싶었던 악기를 배우는 것처럼 흥미로운 일을 찾아내서 현실도 머물러 있을 만한 곳이라고 느끼게 한다.
인터넷 중독은 인터넷이라는 미디어가 생기면서 만들어진 사회 병리다. 그러나 여론에서 말하듯 위험하고 호환·마마와 같이 두려운 존재는 아닌 듯하다. 어쩌면 새로운 미디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세대 갈등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실은 겉 포장만 게임과 인터넷일 뿐 그 내용물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마음과 삶에 영향을 미친 공통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이 문제를 풀어 가기가 한결 쉬워질 것이다.
각주
1 정신건강의학과적 진단 분류 : 미국 정신 의학 협회가 정신 질환의 진단을 위해 도입한 분류 체계로 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이라고 하며, 질병을 체계적으로 진단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인터넷에 빠지는 이유는 뭘까? - 인터넷 중독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2012. 6. 30.,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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