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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2-03 11:58
자살과 미디어의 영향력
 글쓴이 : 한국청소년…
조회 : 9,531  
자살도 전염될 수 있듯이 미디어의 자살 보도는 자살을 생각하고 계획하는 잠재적 자살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특히 유명인의 자살은 모방 자살로 이어져 베르테르 효과를 시사한다. 자살 관련 언론 보도를 자제해 자살 충동을 예방하는 파파게노 효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신문, 방송뿐만 아니라 자살 사이트, 드라마, 인터넷, 웹툰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미디어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자살 보도의 전염성

오늘날 미디어는 우리 사회 전반에 다양하게 영향을 미친다. 자살을 예방하는 데도 미디어의 역할은 그 무게감이 크다. 신문, 방송, 잡지, 라디오 등의 올드미디어에서뿐만 아니라 인터넷, 소셜 미디어,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등 뉴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미디어의 형태는 계속 변하고 있다. 미디어 자체의 성격에 따라 구현되는 양상은 다르지만, 이렇게 다양한 미디어에서 자살 사건을 어떻게 보도하느냐는 일괄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자살 사건으로 미디어도 바쁘게 움직인다. 하루에도 수없이 터지는 사건 사고를 보도해야 하는 미디어 관련 종사자의 어려움도 크다. 하지만 현재 자살 관련 보도를 보고 있으면 한 가지 의구심이 든다. 자살 관련 미디어 보도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과연 미디어 관련 종사자들은 자신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현대사회의 미디어는 먹잇감에 달려든 하이에나처럼 물어뜯듯이 자살 사건에 대해 구체적이고 자극적인 정보를 매일 쏟아낸다. 병이 바이러스처럼 전염되듯이(contagious) 자살 관련 정보에 노출될수록 자살도 전염되듯이 번져 나갈 수 있다. 특히 어린 나이의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심각하다.

오스트레일리아의 10대 청소년(12~17세) 2만2064명을 대상으로, 자살 정보에 대한 노출과 실제 자살 행위 간의 관계를 살펴본 연구에 따르면, 자살 관련 소식을 접한(개인적으로 아는 사람 또는 주변인이 자살로 사망한 경우) 청소년은 자살 충동에 빠지게 되어 자살 생각(suicide ideation)과 시도(attempts)가 높아지고, 이러한 경향은 나이가 어릴수록 강하게 나타났다(Swanson & Colman, 2013).

이러한 결과는 반복적으로 증명된다. 대중매체에서 유명인의 자살을 보도하거나 청소년의 자살 사건을 보여 주는 TV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 1~2주 동안 청소년 자살은 증가한 것으로 보고되었다(Pfeffer, 1989). 미디어에 보도되는 자살 관련 영상도 분석되었다. TV 또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자살 장면은 청소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Ostroff & Boyd, 1987). 그러나 실제 인물의 자살 사건 보도 기사의 영향력은 그보다 4.03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Stack, 2000; 2003).


모방 자살, 베르테르 효과

미디어의 자살 보도와 실제 모방 자살 사망자수를 비교한 연구에서 TV 보도량과 모방 자살의 상관계수는 0.76으로 신문의 상관계수(0.71)보다 높게 나타났다(Jeong et al., 2012). 자살 관련 보도가 자살보도권고기준을 어느 정도 준수하고 있는지를 살펴본 조사에서도 신문에 비해 TV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2011년부터 2012년 8월까지 자살 관련 보도를 분석한 결과, 방송사의 52.3%, 신문사의 47.5%가 자살보도권고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박새미, 2012).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미준수율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텔레비전은 시청각 정보를 동시에 제공하는 매체로 방송 화면에 제공되는 인물들의 외모, 소품 등 시각적 화면과 인물들의 발화, 음향효과 등 청각적 정보가 복합적으로 제공된다. 이렇게 영상과 음성으로 전달되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방송 내용은 수용자들이 특정 이슈를 이해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인식 틀(cognitive frame)을 형성시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김호경 외, forthcoming).

자살 관련 보도에서도 연예인 자살 보도는 실제 자살 관련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유명인의 자살에 따라 본인의 목숨도 끊으려고 시도하는 ‘모방 자살(copycat suicide)’이 일어나는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라고 일컫는다. 1774년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된 이후 소설 속의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똑같은 방법으로 자살하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현상에서 비롯된 용어다. 이를 막기 위해서 이탈리아, 독일, 덴마크에서는 이 소설의 출판과 판매를 금지하기까지 했다.

연예인 자살 보도의 막대한 영향력을 보여 주는 일례로 홍콩배우 장국영을 들 수 있다. 그는 2003년 4월 1일 홍콩섬 센트럴에 위치한 호텔 24층에서 쪽지 하나를 남긴 채 46세의 나이로 투신자살했다. 그의 자살 사건이 만우절과 겹치면서 팬들은 거짓말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지 9시간 만에 6명의 팬이 자살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또한 그동안 많은 유명인과 연예인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자살예방협회는 연예인의 자살이 실제 일반인의 자살 사건에 미치는 영향력을 파악하기 위해 통계청의 실제 자살자 수와 비교했다. 조사 결과, 2005년 이후 유명 연예인 5명이 자살한 이후 각 2개월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은 평균 2631명으로 집계됐다. 각 사건의 전년과 이듬해 같은 기간(각 두 달) 자살자 수 평균은 2025명에 그쳤다.

유명인 자살 이후 2개월 동안 전체 자살자 수가 일반적 추세보다 평균 600여 명 정도 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경향신문, 2013). 개별 사례로 보면, 2008년 10월 1일 고 최진실이 자살을 택한 10월 한 달 동안 자살자 수가 평소 1000명에서 1800명으로 80% 증가했고, 그 가운데 80%가 같은 방법으로 자살했다.

2005년부터 2011년 7년간 자살로 사망한 9만4845명에 대해 조사한 전홍진 교수팀도 국내 자살 사건의 18%가 유명인 사망 후 1개월 이내에 집중되었다고 보고한다(연합뉴스, 2015). 2001년부터 2011년 사이 발생한 유명 연예인 자살 사건과 실제 자살률 증가폭을 분석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도 유명인 자살 사건 직후 1개월간 전 세대 계층별로 남성에게는 1.57배, 여성에게는 2.06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이미나, 2013).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공인들의 자살 사건을 보도하는 데 미디어의 신중한 자세가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파파게노 효과

언론이 어떠한 방식으로 자살 사건을 보도하느냐에 따라 실제로 자살을 생각하고 계획하는 잠재적 자살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날 수 있다. 이에 따라 미디어 보도의 긍정적 효과, ‘파파게노 효과(Papageno Effect)’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파파게노가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목을 매려고 할 때 요정 셋이 나타나 그를 말린다. 요정의 도움으로 죽음의 유혹을 극복한 파파게노는 희망을 상징한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도록 돕는 파파게노 효과를 언론을 통해 극대화할 수 있다.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자살 보도를 자제함으로써 자살 충동을 예방해 희망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오스트리아도 한때는 자살률이 높은 국가였지만 언론이 지하철 자살률을 떨어뜨려 안정화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지하철 자살률이 급증한 오스트리아는 원인을 연구한 결과 상세한 언론 보도가 또 다른 자살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즉시 언론의 자살 보도를 자제하는 방법을 쓰자 자살률이 급격히 줄어들었다(Etzersdorfer & Sonneck, 1998). 핀란드 또한 한때는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썼던 나라였지만 지금은 자살을 획기적으로 줄인 성공적인 국가다. 언론 보도와 관련해 핀란드는 자살 보도 자체를 금기시하는 분위기다(유승용, 2014; Upanne, Hakanen & Rautava, 1999).

우리나라도 자살 보도와 관련한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에 입각해 자살보고권고기준을 2차에 걸쳐 제정 · 공표했다. 그러나 미디어 스스로의 자정 노력을 막연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자살 관련 정보를 좀 더 편리하고 은밀하게 찾을 수 있는 통로와 자살을 모의하는 장소를 제공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인터넷 자살 사이트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국내에서 2000년 4월부터 자살 사이트가 홈페이지나 동호회 형식으로 개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2000년 12월부터는 자살 사이트로 인한 피해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주지홍, 2003).

요즘 2030세대는 대한민국을 일컬어 ‘헬조선’이라고 폄하한다. ‘헬조선’은 ‘헬(hell, 지옥)’과 ‘조선(朝鮮)’의 합성어로 ‘지옥 같은 대한민국’을 의미한다. 취업난에 시달리고 비정규직 일자리로 내몰린 청년을 ‘88만원 세대’로 불렀다. 이어 연애 · 결혼 · 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해서 ‘3포세대’라고도 했다. 이러한 청년층의 자조 섞인 아우성이 이제는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를 포기한 ‘5포세대’, 여기에 꿈과 희망마저 포기한 ‘7포세대’로 넘어섰다. 이제는 심지어 다른 것도 다 포기해야 할 상황이라는 뜻에서 ‘N포세대’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지옥’과 ‘포기 세대’로 대변되는 참담한 현실에 더해, 자살 방법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언론 보도뿐 아니라 드라마 · 포털사이트 · 웹툰 · SNS에서도 자살 콘텐츠가 넘쳐 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의 중요성에 따라 사회적 책임도 강력히 실천하는 미디어 본연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자살과 미디어의 영향력 (자살 예방 커뮤니케이션, 2015. 11. 1., 커뮤니케이션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