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청소년기는 다른 시기보다 유독 정서적으로 힘들고 예민한 것일까? 청소년기 정신건강의 대표적 문제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우선 아동기에서 성인기로 전환되어가는 발달학적 과업 달성과 관련한 문제가 있다. 이 과업은 ‘독립’이다. 하나의 주체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정신적 독립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벌어지는 부모와의 갈등이 한 예가 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로는 청소년기 우울증이 있다. 성인기 우울이 내면적이고 조용한 형태로 나타난다면 청소년기 우울은 마치 비행청소년 같은 행동적 문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초등학생 때 시작된 문제가 지속되어 청소년기 문제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의 경우 대개 초등학교 때 시작된다. 다행히 청소년기가 끝날 무렵에 이르면 과잉행동의 문제는 어느 정도 호전이 되지만, 주의력의 문제는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로 인한 진짜 문제는 과잉행동과 주의력결핍으로부터 파생되는 이차적 문제다. 성장기 동안 칭찬과 긍정적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해서 낮은 자존감, 자아정체성의 혼란 등의 문제가 이어지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시작하는 술과 담배의 문제, 인터넷 게임 과몰입의 문제 그리고 학교폭력의 문제 등이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아니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계 어느 나라의 청소년들이나 보편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정신건강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청소년기 자살은 이 모든 부정적 경험의 합으로 인해 발생하는 최종적 산물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의 특징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의 특징
성별에 따른 차이가 거의 없다
전 연령층을 따져 보아도 남성이 여성보다 2배 자살을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연령대가 올라갈 수로 심해져서 40대의 경우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가 남성이 47.6명, 여성이 20명인 반면, 80대의 경우 10만 명당 자살자가 남성이 222명 여성이 83명으로 성별에 따른 차이가 더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청소년의 경우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자는 남성이 10만 명당 5.3명이고 여성은 5명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여성 특히 젊은 여성의 자살률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높다는 점과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세대에 비해 잘 버텨 주고 있다
사실 청소년의 자살 사건은 다른 세대의 자살 사건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미디어도 그런 관점에서 청소년 자살을 훨씬 자극적으로 다루고 있는 면이 있다. 그러나 통계상으로 살펴보았을 때, 청소년의 자살률은 다른 세대의 자살률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전체 자살률이 OECD국가 중 1위이며, 특히 노인의 자살률이 여타 OECD 국가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높지만, 우리나라의 청소년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중간 정도에 해당된다.
뉴질랜드, 아일랜드, 핀란드, 폴란드 등의 국가에서 청소년 자살률이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온갖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름 꿋꿋이 버텨주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물론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 1위가 아니라고 해서 괜찮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자살을 다 막을 수는 없겠지만 막으려는 노력을 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명제이다.
한 순간의 ‘충동’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성인의 자살은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증 같은 정신질환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극심한 우울감 등 징후가 미리 나타나곤 한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우울증 등 어떤 징후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갑작스러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즉, 청소년의 자살은 사전 계획 없이 순간적인 충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작고 사소한 계기, 즉 친구와의 다툼, 부모의 꾸중, 경쟁에서의 패배 등이 자살로 이어지게 하는 사건들이다. 하지만 자살시도에 비해 자살 성공 확률은 낮은 편인데, 약물 복용이나 동맥절단 등 비교적 덜 치명적인 방법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청소년들은 자신에게 당면한 문제를 풀어내기보다 자살로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때문에 청소년기의 자살은 정말로 죽으려고 하는 의도보다는, 자신의 괴로움을 극단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려는 의도가 강하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과 자살시도는 우울, 불안 및 분노, 적대감 등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청소년들은 미성숙하기에 이러한 부정적 감정을 적절히 다스리지 못하고 파괴적 행동으로 나타내는데, 파괴적 행동이 자신을 향할 때 충동적인 자살시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조사마다 다르지만 대략 청소년의 15~46%가 일 년 동안 한 번 이상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하고, 3~11%의 청소년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보고되었다. 또한 대학생 자살시도자의 73%가 대학 진학 이전에 첫 번째 자살시도를 했다는 결과를 미루어 볼 때, 청소년기부터 초기성인기까지 이르는 이른바 ‘젊은 시기’의 위기는 청소년기부터 싹을 키우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육체의 질병에 있어 병이 심해지기 전에 조기 예방이 중요한 것처럼, 자살도 마찬가지로 성인이 되기 전 청소년 시기에 그 싹이 트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충동적 성향이 강한 청소년의 특성상 한 번의 위기상황을 넘기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직 온전한 자기(SELF)가 완성되지 않았기에 성인기에 이를 때까지 지속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치료도 필요하다. 청소년 자살시도자의 7~8%만 병원에 방문한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성인의 경우 10~15%), 좀 더 적극적인 형태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권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