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초·중·고교생 자살 581명⋯ 고교생 70%
# 부산에 사는 고3 수험생 A(18)군은 ‘9월 모의평가’ 시행 전날인 지난달 5일 오후 11시가 훌쩍 넘은 시각에 칠흑같이 어둡고 싸늘한 밤 바다로 몸을 던졌다. 대입(大入)을 앞두고 성적이 오르지 않자 심리적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결심한 것이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 의해 무사히 구조돼 곧장 병원으로 후송됐다”며 “조사 결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을 앞둔 A군이 학업 성적을 비관해 바다에 뛰어든 것으로 보고 부모에게 인계했다”고 전했다.
# 수험생 자녀를 둔 워킹맘 B씨는 최근 아들이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를 듣곤 깜짝 놀랐다. “지난번 모의고사 점수는 그냥 자살각(‘자살할 만큼 좋지 않다’는 뜻의 신조어)”, “나랑 같이 한강 갈래?” 등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얘기를 가벼운 일인 듯 농담처럼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B씨는 “아이에게 ‘죽는다’는 얘기를 함부로 해선 안 된다고 말했지만, ‘그 정도로 수능에 대한 압박이 심하단 얘기’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아들이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
수능을 한 달여 앞두고 학업·입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고교생들이 늘고 있다. 불안감에 따른 우울, 두통, 소화불량 증상부터 심할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실제로 최근 성적 비관, 가정불화 등의 이유로 자살에 이르는 초·중·고교생이 매년 100명을 넘는다는 통계도 나왔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자살한 초·중·고 학생은 모두 581명으로 집계됐다고 최근 밝혔다. 이는 한 해 평균 116명, 한 달 평균 10명이 자살한 셈이다.
특히 청소년 자살 비율은 본격적으로 대입을 준비하는 고교생들 사이에서 압도적으로 높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고교생이 404명(69.6%)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중학생이 156명(26.8%), 초등학생이 21명(3.6%) 순이다. 지역별로는 경기 120명(20.6%), 서울 94명(16.2%), 부산 41명(7.1%), 경남 40명(6.9%), 충남·광주 각각 34명(5.8%), 인천 33명(5.7%), 대구 31명(5.3%), 경북·전남 각각 28명(4.8%) 등 순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유독 고교생 자살률이 높은 이유 중 하나로 ‘학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꼽았다. 김도연 한국청소년자살예방협회 대표는 “아직도 우리 사회는 ‘좋은 대학에 가야 성공한다’는 말로 청소년들에게 학업에 대한 무거운 압박과 부담을 지어주고 있다. 최근엔 대입에서도 내신의 비중을 늘려 고1부터 무한경쟁 속으로 몰아넣는 실정”이라며 “이처럼 학생들의 불안과 고통은 매년 반복되는데, 정책 당국은 잦은 교육정책 변경과 두루뭉술한 예방 대책만을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소년상담복지센터 한 상담전문가는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가 학년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이와 관련한 상담 수도 늘고 있다”며 “단 1점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현재 대입 구조상 고교생들의 학업 부담은 더욱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5년 중·고교생(만14∼18세) 5000명을 대상으로 사회·심리적 불안요소를 조사해보니, 절반 이상이 학업(32.9%)과 진로문제(28%)라고 답했다. 빈번한 교육입시제도 변경을 꼽은 청소년도 17.6%에 달했다.
이에 “청소년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 대표는 “현재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관련 예산은 미미하다. 청소년 자살률이 높은 일본과 비교했을 때 30분의 1 수준”이라며 “청소년 자살예방을 위한 사업에 보다 많은 예산을 편성하고, 학교 현장에서도 자기 비난을 줄이는 자기수용 프로그램, 긴장을 이완시키는 정서조절 프로그램, 생각 다스리기 프로그램 등 예방 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곽상도 의원도 "교육 현장에서 전문 상담을 강화하고 교사 개개인이 늘 학생의 고민을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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