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연령대의 자살률이 감소하고 있는데도 유독 10대 청소년의 자살률은 상승세로 돌아서고 있어 정부 대책 마련 등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사상 최고의 청년 실업률과 계층상승 사다리의 붕괴, 가정의 해체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2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0대의 자살 사망률(인구 10만 명당 사망자수)은 4.9명으로 2015년(4.2명)에 비해 16.5%나 증가했다. 지난 2011년(5.5명) 이후 이어져 온 감소세가 6년 만에 바뀐 것이다. 지난해 전체 자살률(-3.4%)은 물론 70대(-13.5%) 80대(-6.6%) 30대(-1.8%) 등의 자살률이 감소한 것과도 대조된다. 20대의 자살률은 0.1% 상승, 사실상 제자리였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사회ㆍ경제적 구조와 관계가 깊다”고 입을 모았다. 권일남 한국청소년활동학회장(명지대 교수)은 “10대들이 느끼는 학업 부담과 스트레스는 그대로인 반면 청년실업 등의 여파로 학업을 통해 보장 받을 수 있는 ‘기대 이익’은 급감한 게 영향을 미친 것”이라며 “과거처럼 열심히 공부만 잘하면 사회에서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었던 ‘동기’도 약해졌다”고 설명했다. 홍현주 자살과학생정신건강연구소장(한림대 교수)도 “지금 10대 청소년들이 느끼는 미래는 상당히 절망적이고 희망이 없는 공간”이라며 “미래에 대한 절망으로 인해 10대들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이게 최악의 선택으로 연결되고 있다”고 말했다.
10대 청소년의 ‘보금자리’가 돼야 할 가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도 한 요인이다.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은 “경기침체로 가정 불화가 심해지고 이혼이나 별거로 한부모 가정이 늘어나며 청소년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드라마나 인터넷에 자살에 대한 묘사가 많은 점도 ‘방아쇠’가 되고 있다. 이수정 경남대 교수는 “10대의 자살시도 방법을 살펴보면 과거에는 간단한 자해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미디어의 영향으로 일산화탄소 중독이나 투신 등 치명적 수단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유현재 서강대 교수 등이 2015년8월부터 1년 간 밤 9~12시에 방송된 지상파 드라마 70개를 점검한 결과에 따르면 48개(68.5%) 드라마에서 총 110회의 자살 장면이 등장했다. 유 교수는 “드라마나 웹툰 등이 자살을 예사롭지 않게 다루면서 청소년이 자살을 인생의 선택지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답은 60대 이상 노년층의 자살이 가파르게 줄고 있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10년 전(2006년)과 비교해 80대 이상 자살률은 무려 30.7%나 감소(2006년 112.7명→지난해 78.1명)했다. 백종우 한국자살예방협회 사무총장(경희대 교수)은 “2011년 자살예방법이 통과되며 맹독성 제초제인 ‘파라콰트’(그라목손)의 생산ㆍ유통이 금지된 뒤 농촌 노인들의 음독 자살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이상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2011년부터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독거노인들을 찾아 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 것도 노인 자살률 감소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노인 자살률 감소가 결국 “정책적 지원과 관심의 결과”란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는 청소년의 자살 예방에도 정책적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홍 소장은 “현재 자살 관련 예산이 대부분 노인 계층에 집중돼 있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정책 지원은 미미하다”며 “청소년 자살예방을 위한 사업에 보다 많은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 한국일보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