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가 자꾸 떠올라요. 학교 가기가 무서워요. 괴롭힘 당하던 것이 자꾸 생각나서 무서워요. 그 아이는 공부도 잘하는 아이고 선생님들도 좋아하는 아이예요. 저는 공부도 못 하고 인기도 별로 없는데, 누가 제 얘기를 듣겠어요? 밤에도 매일 무서운 꿈을 꿨어요. 학교 가는 게 죽는 것보다 싫었어요. 육교에서 떨어질까도 생각했는데 엄마 아빠 생각에 차마 할 수 없었어요.”
중학교 2학년 K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해왔다. 가해학생은 문자로 욕설을 하고, 물건과 돈을 뺏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폭행과 괴롭힘의 강도는 점점 심해졌고, 가해학생들은 K군에게 자신의 심부름이나 숙제 등을 시키곤 했다. 수 개월 동안 괴롭힘이 이어졌지만 K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 사이 K는 우울감이 심해지고 성적이 떨어졌으며, 작은 일에도 놀라고 화를 잘 내며 눈맞춤을 피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K는 갑자기 극도로 불안해하며 등교를 거부했다. 엄마가 혼을 냈지만, K는 되려 학교 가기 싫다고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던지고 엄마를 밀치는 등 공격적인 행동을 보였다.
정신의학적 평가에서 K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와 극도의 불안과 우울 증상이 혼합되어 있었다. 상담을 하는 의사도 처음에는 K가 겪은 이야기를 듣고 믿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구나.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 잘 버티어 온 것을 보니 훌륭하다”며, 의사가 K군이 당한 괴롭힘에 대해 명확하게 보호해주겠다는 확고한 의사를 전하자 K는 울음을 터뜨렸다. 의사가 K의 이야기를 잘 듣고 걱정에 대해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K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더 잘 표현하였다.
불안과 우울을 줄이는 약물치료와 더불어, 평소 자기생각을 표현하지 못했던 K를 위한 자기주장 훈련, 사회기술 훈련, 상담 등을 통해 K는 점점 밝아졌다. 가족 치료를 통해 부모들도 죄책감에서 벗어나 K의 편에서 이해할 수 있는 태도를 지니게 됐다.
학교폭력, 도대체 왜 생길까?
학교폭력은 가해자 혹은 피해자의 단순한 행동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가해자 혹은 피해자의 개인적 특성, 가정, 학교 및 사회 등 복합적인 사회환경적 요소에 의해 발생하게 된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 이러한 다양한 원인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먼저 개인적 요인을 살펴보면, 개인의 품행장애, 반항성 장애 및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와 같은 정신건강의학적 요인이 학교폭력의 발생과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가해학생들은 반사회적 경향성과 신체 공격성이 매우 높고, 스스로도 충동적인 행동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지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피해학생들은 불안감과 우울감이 높은 경향이 있다.
가정적인 요인을 살펴보면, 부모의 애정과 관심의 부족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거나 자녀가 공격행동을 했을 때 방임한 부모 밑에서 자란 학생들이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또 폭력 가해학생은 부모-자녀간 갈등이 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사회∙문화적 요인도 학교폭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등의 대중매체를 통해 폭력물에 노출된 청소년들은 폭력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폭력을 모방하고 싶은 경향이 생긴다. 폭력에 자주 노출된 청소년들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쉬워진다. 실제로 대중매체를 통해 언어적이고 신체적인 폭력을 많이 경험한 청소년일수록 학교폭력 가해 경험이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학교나 친구도 학교폭력의 한 위험요인이다. 특히, 가해 청소년은 일반 청소년에 비해 친구와 관계를 형성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원만하지 않은 친구 관계로 친구나 교사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학교폭력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학생 간에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 유인, 명예훼손, 모욕, 공갈, 강요, 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 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 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서 실시한 2011, 2012 학교폭력 실태조사 자료를 분석하면, 요즘의 학교폭력은 과거와 조금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대상 연령이 어려지는 추세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하 청예단)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총 55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2년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을 접하는 연령이 점점 어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폭력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시기는 중학교 1,2학년이지만, 피해학생이 학교폭력을 처음 당한 시기는 초등학교 5학년(17.8%)이 가장 많았다. 특히 피해학생들 대다수가 초등학교 때(저학년 30.5%, 고학년47.8%) 처음으로 학교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나 학교폭력의 대상 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학교폭력에 노출되는 시점이 어릴수록 그 후유증이 오래갈 뿐 아니라 학교생활에 적응이 어려워지므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폭력에 대한 예방 교육과 대처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학교에서 사이버 공간으로 폭력의 범위 확대
과거의 학교폭력이 주로 물리적인 신체적 폭력이었다면 최근의 학교폭력은 언어 폭력이나 사이버 폭력과 같은 신종폭력으로 범위가 커지고 있다.
학교폭력의 대표적인 유형으로는 신체에 해를 끼치거나, 옷이나 물건을 망가뜨리는 신체적 폭력, 놀리거나 모함하고 욕설 등으로 위협하여 심리적으로 괴롭히는 언어적 폭력, 그리고 무리에서 따돌리고 무시하는 관계적 폭력 등이 있다. 학교폭력에서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것은 ‘언어적 폭력’으로 전체 피해 유형의 41.2%를 차지했다(청예단 2012년 실태조사).
최근에는 이처럼 폭력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범위가 확대되어 가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매체가 발달되면서 청소년들이 즐기는 인터넷에서 행해지는 사이버 폭력과 같은 신종폭력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사이버 폭력의 예로는 인터넷이나 핸드폰을 이용한 협박, 비난, 위협, 악성 댓글 달기, 원치 않는 사진이나 동영상 유포하기, 사이버 머니∙아이템 훔지기 등을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폭력적인 강간, 성추행, 성희롱과 같은 심각한 성폭력도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어, 학교폭력의 범위가 보다 넓어지고 수법은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제도나 선생님을 믿지 못하는 경우 많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학교폭력의 피해 사실에 대해 입을 다물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것도 최근의 추세이다.
10명 중 3명의 학생은 학교폭력을 당한 후에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고 조사되었다(청예단 2012년 실태조사). 그 이유로는 ‘일이 커질 것 같아서’ 그리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등의 대답이 가장 많았다. 학교폭력의 해결에 대해 어른들에게 기대감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이야기한 학생들 중에서도 절반 가까이(41.8%)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최근에는 문신을 한 건장한 청년들이 돈을 받고 가해학생을 위협해서 학교폭력을 해결해준다는 심부름센터까지 등장했다. 폭력으로 폭력을 다스린다는 방식은 매우 비윤리적이고 비교육적인 방법이지만, 학생들은 학교나, 교사, 보호자를 믿는 대신 변질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학교폭력에 대해 입을 열고 어른들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다 확실한 신고체계와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원 방안, 사회적 인식 제고 등이 무엇보다 절실하게 요구된다.
폭력으로 인한 고통의 증가, 자살을 생각하는 학생들도 늘어나
2012년 조사에서 나타난 학교폭력의 피해율은 12.0%로 2011년 18.3%에 비해 다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11년에는 33.5%의 학생이 학교폭력으로 인한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한 것에 비해, 2012년에는 그 수치가 49.3%로 훌쩍 뛰었다. 학교폭력이 양적으로는 다소 줄어들었지만, 체감할 수 있는 폭력의 수준은 더욱 심각해진 것이다.
이런 심각한 폭력은 우울증, 자살, 범죄 등 고질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로 대한소아청소년의학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학교폭력의 피해를 받고 있는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약 3배 정도 더 많이 자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도 학교폭력을 경험한 학생 중 절반 가량은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2011년 3분의 1보다 높아진 수치로, 학교폭력의 피해학생이 될 경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청소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음을 뜻한다.
출처 : 학교폭력의 현실 (정신이 건강해야 삶이 행복합니다, HIDOC)
저자 : 대한신경정신의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