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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25 09:41
청소년 자살률과 미디어의 상관관계
 글쓴이 : 한국청소년…
조회 : 17,294  
드라마·웹툰 속 일상화된 자살 장면…방아쇄 역할 우려

올해도 어김없이 사망자 주요 원인이 통계로 발표됐다. 헬스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당연하게 관심이 갔다. 수십 년째 사망원인 1위인 암과 관련해 헬스컴적 시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했으며, 연령 혹은 성별 등의 주요 변수에 따라 사망원인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사망원인 통계에서 필자의 시선이 머문 지점은 심각한 자살률에 대한 특이사항이었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2011년 10만명당 31.7명이라는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차츰 줄어들고 있다. 올해 역시 지난해 10만명당 26.5명보다 줄어든 25.6명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OECD 국가 중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회원국의 평균 자살률(10만명당 12명)과 비교하면 아직도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무서운 통계결과다.



자발적 죽음의 무방비 노출

특히 청소년의 죽음이 먹먹하게 다가온다. 청소년 자살률은 OECD 국가 평균 수준과 비슷하지만 안타깝게도 증가하는 추세다. 전 연령대의 자살률은 감소세로 돌아섰지만 유독 청소년 계층의 상황은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1020 세대의 사망원인 중 1위가 자살이라는 참담한 현실은 어떻게든 개선되어야 하는 문제다.

이와 관련, 필자는 몇몇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유독 청소년 자살이 증가하고 있는 이유와 배경, 그리고 향후 대책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들이었다. 우선 기자들에게 우리나라가 처한 자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강조했다.

자살은 단일한 원인과 특정 변수들에 의해서만 논의될 수 없는 대단히 복합적이며 복잡한 사안이다. 지금은 예방을 위해 어떤 일을 먼저 하고, 무엇에 신경 써야 할 것인가 등 과업의 효율성을 따져야하는 국면이 아니다. 다방면에 걸쳐 ‘뭐든지’ 노력해야하는 위급상황이다.

아울러 기자들에게 미디어의 해악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청소년들이 접하고 있는 각종 미디어 속 자살을 보면 상식적으로 너무나 이해할 수 없는 환경이 펼쳐진다.

무방비로 노출되는 드라마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에 대해 상당 부분 극적으로 미화하거나, 대단히 감성적인 분위기로 묘사되는 시퀀스가 많다. 감미로운 음악이 배경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이유와 명분이 너무나 아름답게 포장된다. 심지어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 속에서도 자살은 흔한 소재가 됐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이 즐겨 보는 웹툰도 영상콘텐츠만큼 심각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 실제 아예 제목에 ‘자살’이라고 드러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령 한 웹툰에는 죽음을 결심한 주인공이 목맴을 이용, 도구로 사용할 로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스토리의 중간에 유머요소도 삽입해 준비 및 결과 등을 희화화하는 장면도 관찰된다. 귀엽게 표현한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여타 등장인물과의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투신을 시도하는 스토리를 넣기도 했다.

이렇게 각색된 콘텐츠는 험난한 삶을 버텨내고 있는 청소년에게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옵션 중 하나로 자발적 죽음을 교육하는 위험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미디어의 이 같은 위험성을 지적하게 되면 “자살도 우리 삶의 일부인데 뭐가 그렇게 문제인가?” “그런 콘텐츠를 접한다고 해서 자살 의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있느냐?” “혹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의도인가?” 등의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물론 드라마와 웹툰 등의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충분히 제기할 수 있다. 콘텐츠 창작자 입장에선 제3자의 지적이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자정노력+구조적 해결책 시급

하지만 대중문화 콘텐츠 속 자살 장면을 언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이 너무나도 절박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위급한’ 현 시점에서 육체적‧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에 있는 계층에게 단 1%라도 부정적 영향을 주거나, 일종의 방아쇠 역할을 할 가능성이 보인다면 ‘한시적이라도’ 유의해야 한다.

부정적 영향이 예측되는 사안을 방지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엄격한 정책이 아닌 공감대의 확산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자정 작용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정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필요성조차 제대로 공론화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다소 엄격하고 구조적인 해결책을 고려해야 한다.

자살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의 기관에서 모니터링하고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좀 더 촘촘하고 현실적인 원칙이 보완될 필요가 있다. 콘텐츠의 상세한 분류, 노출되는 미디어 장르, 노출되는 시간(대), 횟수와 선정성의 정도 등에 대한 사항들까지 정교하게 논의돼야 한다.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현실적인 방안들이 마련되려면 관련 연구 또한 지금보다 훨씬 활발해져야 할 것이다.

‘청소년 자살과 미디어’라는 주제로 발표할 때마다 질문 혹은 댓글의 형태로 반드시 등장하는 반응 가운데 하나가 “결국 청소년들의 자살이 미디어 때문이라는 것인가?” “이런 노력을 할 시간에 답답한 사회구조를 바꿀 생각을 해야지… 쓸데없다” 등이다. 필자 또한 미디어 속 자살 장면이 감소한다고 해서 청소년 자살률이 갑자기 떨어질 것이라 기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은 각자가 기여할 수 있는 영역에서 무조건 노력해야 하는 위급한 시점이다. 청소년의 자살원인 혹은 배경이 될 수 있는 변수가 아무리 작다 해도 하나씩 줄여가는 작업이 있어야만 작은 성과라도 올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hyunjaeyu@gmail.com)

[출처: 더피알] http://www.the-pr.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4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