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골절·화상…‘몸의 구조 신호’ 봤다면 아동학대 의심하세요
망막 출혈 대퇴부·흉골 골절 등
신체 손상이 가장 중요한 징후
‘3개월 아기가 침대서 떨어졌다’
‘아이가 놀이터서 늑골 부러졌다’
국내 아동학대 사망 사건은 1~2주에 한번 꼴로 발생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국가의 방임으로 커졌듯, 아동학대 사망도 사회의 방임에서 조장된다.
2013년말 나라를 흔들었던 ‘이서현 사건’에서 서현이는 제 몸으로 최소 5차례 사회에 ‘아프다, 살려달라’ 구조 신호를 보냈다.
등에 멍든 6살 서현이를 유치원 교사가 “학대가 의심된다”며 포항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다. 2011년 5월13일, 최초의 신호였다. 물론 이전부터 서현이는 계모(동거) 박아무개씨로부터 맞고 있었다.
7살 서현이는 대퇴부(넓적다리뼈)가 부러져 119 구급대로 병원에 후송된다. 2012년 5월21일, 두번째 신호다. 박씨는 “학원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병원에, “우편함에서 굴렀다”고 학원에 말했다.
다섯달 뒤 서현이는 손목, 발목에 2도 화상을 입어 입원한다. 2012년 10월31일이다. 박씨는 “샤워 때문”이라며, 아이의 세번째 신호를 눙쳤다.
2013년 9월 추석 직후 담임교사도, 피아노 학원 원장도 서현의 얼굴에 난 멍 자국을 발견했다. 네번째, 다섯번째 신호였다. 이들은 학대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현이는 영영 침묵한다. 그해 10월24일, 박씨는 “(서현이) 반신욕 중 사망했다”며 119에 신고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서현이는 갈비뼈 16개가 골절되었고, 부러진 뼈가 폐에 박혀있었다.
멍, 화상, 대퇴부 골절 등 서현의 ‘신호’는 아동학대 가능성을 시사하는 가장 전형적인 지표로 간주된다. 그런데도 병원, 119, 학교, 학원, 아동보호전문기관 어디서도 서현이를 구출하지 못했다.
아동학대는 거개 우발적이지 않다. 이는 고스란히, 사회가 조기에 개입해 아동학대의 점증을 예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서현이처럼 신체 손상이 일단 중요한 징후다. 전문가들은 특히 망막·경막 밑(뇌경질막) 출혈, 대퇴부·상완·흉골·견갑골 골절 등을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요주의 손상으로 본다. 2살 미만일 수록 대부분의 골절에서 ‘학대 혐의’는 더 커진다. 대부분 강력하고 지속적인 외부 충격으로 ‘겨우’ 가능한 결과란 공통점이 있다.
아동학대 징후
곽영호 서울대병원 교수(응급의학과·학대아동보호팀장)는 “3개월된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졌다? 어린 아이가 놀이터나 침대에서 떨어져 늑골이 부러졌다? 그러면 일단 거짓말이고 아동학대일 가능성을 의심해야 한다. 뒤집기도 못하는 아이가 침대에서 혼자 떨어질 수 없고, 신체발달상 아주 유연한 뼈를 가진 아이들은 강한 심폐술을 받아도 늑골이 부러지진 않는다”며 “단정하기 어렵지만, 망막출혈 1천명 가운데 800명, 상완골절 500명, 경막하 출혈 손상 1천명 가운데 400명 꼴로 아동학대를 의심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특정 손상만으로 아동학대를 단정하기 쉽지 않다. 미국소아과학회는 아동학대 평가지침(2007년)으로 피부·머리·흉부·복부·근골격계 손상 등의 신체검진 외, 병력에 대한 타당한 설명 여부, (손상에 대한) 목격자의 다른 진술 등을 살피도록 하고 있다. 대한소아응급학회도 최근 개발한 ‘아동학대 의심 선별도구’로 이를 구체화하고 있다.
이에 기반해 의료인이 보호자와 아동을 문진하고, 2가지 이상 해당될 경우 신고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의료인이 법상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인데도, 실제 신고율이 대단히 낮은 현실을 보완한다는 취지가 실렸다.
보호자의 의료 방임은 물론 역으로 특정 손상을 감추기 위해 병원을 자주 옮기는 것도 아동학대를 의심해 볼 행동이다. 김민선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 진료교수는 “외국의 가이드라인은 대표적 손상들 외 병력으로 아동학대 여부를 살피도록 하고 있다”며 “몸무게 미달, 영양결핍 등이 발견되면 대단히 심각하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응급실에 온 아이들의 아동학대 여부를 의료진이 메뉴얼에 기반해 진단하도록 2009년 법제화했다. 정진희 보라매병원 교수(응급의학과)는 “네덜란드는 이를 위해 큰 국가적 지원이 있었다”며 “그밖에 지침까진 아니더라도 여러 종류의 선별도구를 국가나 기관마다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이제야 ‘선별 도구’가 개발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생후 4월에서 71월까지 국가가 개입해 건강 발달을 살피는 영유아 검진서부터 아동학대 진단이 의무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영유아 검진의 건강교육, 발달검사 항목에 아동학대 의심지표를 추가하고, 영유아 검진을 필수화하면 아동학대의 보편적 예방·조기 발견 시스템으로 효과적으로 기능할 것”(<아동학대 사망관련 지원서비스 체계화 방안 연구> 2012년)이라고 말한다.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가장 원초적인 방안은 ‘신고’다. 서현이 사건을 담당한 1심 재판부는 이렇게 판시했다. “체벌과 가정 내 폭력에 관대한 기존 정서와 주변의 무관심, 외면, 허술한 아동보호체계 및 예산과 인력의 부족 등 우리 사회 전반의 아동보호에 대한 인식과 제도의 문제도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 것인 바,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도외시한 채 피고인을 극형에 처하는 것만으로 이러한 비극의 재발을 막을 수 없음은 자명하다.”
또다른 서현이들이 몸으로 써낸 신호를 온 마을이 이해하지 못하면, 학대의 비극은 계속되리란 얘기다.
임인택 류이근 최현준 하어영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