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따돌림의 문제와 처방
초·중등 각급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 이 예 상보다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금 묵은 자료이 지만 '청소년 대화의 광장'이 지난 97년 9월 전국 초·중·고생 1천6백2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 학급당 평균 1~2 명이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56%, 3~4명 이라고 답한 경우가 21.1%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42%) 자신이 따돌림당하 는 이유를 뚜렷이 인식하지 못하고 '내 편의 친구 가 없기 때 문에' (27%), '대항할 힘이 없어서' (23%), '분위기를 맞추지 못하기 때문' (18%)이라 고 응답했다.
보다 큰 문제는 전체의 77%가 주위에 괴롭힘을 당 하는 학생이 있어도 선생님께 말씀드리지 않는다고 했으며, 36%(특히 여자 중학생의 경우는 51%)는 따 돌림을 당하는 학생을 친구로 사귀지 않겠다고 답 했다(삼성생명 사회 건강연구소, 1997). 즉 어른들 이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하는 학 생을 발견하기 어렵고, 따돌림을 당 하는 아이들은 그 상황을 쉽게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신체적 혹은 정신적 장애를 지니고 있는 학생 등 전혀 반항을 하지 못 하는 아이들이 따돌림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결국 성격이 튀거나 유약한 아이들이 따돌림의 대상이되고 있으며, 이들은 대체로 부적절한 대인관계 기 술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집단 따돌림'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또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 야하는지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본다.
☞ 구본웅(청소년 대회의 광장상담교수)
요즈음 학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아마도 또래들로부터 따 돌림을 당하는 것이리라. 그 중에서 도 '왕따'를 가장 두려워한다. '왕따' 란 말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모르 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퍼진 '왕 따돌림' 혹은 '왕 따돌림 받 는 아이'의 준말이다. 학교에서 한번 '왕따'로 지목되면 학 생들은 그 상태를 벗어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하여 무기력에 빠지는 등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겪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학생들 사이에서 때로는 유희로, 때로는 무분별한 힘의 과시로, 때로는 스트레스 해소 방식으 로 만연되고 있다는 것 은 참으로 걱정 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여러 가지 조사 결과를 보면 한 학급에 3~4명의 '왕따'가 있 으며, 4명 중 1명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집 단에서 따돌림을 당 해 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왜 이렇게 집단 따돌림이 만연되고 있는 것일까?
첫째, 조화로운 대인관계 능력을 발달시키지 못한 때문이다.
둘째, 적절한 지도능력의 부족이다.
셋째, 언론의 지나친 관심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집단 따돌림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첫째, 가정과 학교에서 현실을 인정 할 필요가 있다.
따돌림의 문제는 학생 자신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가정과 교육·사회환경이 학생 따돌림의 근본 원인이다. 따라서 따돌림의 문제를 학생들만의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가정과 학교, 사회가 모두 책임의식을 지니고 제몫의 역활을 해야 할 것이 다.
둘째, 학교에서는 학생 자율활동을 촉진시켜 줄 필요가 있다.
따돌림의 문제가 학생들 사이에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 스스로 해결 할 수 있 도록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 다. 학생 스스로 학급토론이나 이들이 주관하는 캠페 인을 통해 스스로의 문제해결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실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 다.
셋째, 학교 상담의 전문화와 또래 상담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학교 상담교사의 전문화를 통해 학생들의 인성 발달을 도와야 할 것이며, 또래 상 담제도를 통해 학생들 스 스로 소외된 또래들을 도울 수 있는 제도를 활성화할 필 요가 있다.
넷째, 열린 학교경영이 필요하다.
교사는 학생지도의 전문가며 아직 이 시대의 가장 양심적인 집단일 것이다. 상급 기관의 일방적인 대책 지시보 다는 교사 스스로 학생문제를 자유롭게 토론하고 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학교경영이 필요하다. 더욱이 문제 를 덮어 두려는 학교경 영의 관행보다는 문제상황을 드러내 놓고 극복하는 모습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문적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의 경우는 학교가 앞장서서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이다.
다섯째, 부모와 교사의 학생지도 능력을 위한 교육기회를 늘려야 한다.
청소년들의 특징은 변화다. 변화하는 아이들을 적절히 지도하려면 부모나 지도자 들이 새로운 지도방법을 끊 임없이 배울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이 가능하도록 다양 한 전문기관들이 교육 기회를 제공하여야 할 것이다.
☞ 이시형(강북삼성병원 정신과 부장)
집단 따돌림. '왕따' 는 심각한 폭력이다. 때리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집단 따돌림은 물리적 폭력 못지않게 심각하고도 비열한 폭력이다. 특히 집단주의적 가치관하에서 성장 한 우리 청소 년들에게 집단 따돌림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청소년들은 학교를 중심으로 또래집단, 즉 친구관계가 형성되게 마 련이다. 이러한 또래 집단은 성장기에 있 는 청소년들에게 매우 중 요한 정신적 기반이자 활동무대가 된다. 이 집단에서 관계형성을 통해 장차 사회인으로 서의 역할과 책임을 배우게 된다. 이 중요한 시기에 따돌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상처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따돌림이란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에서나 일어나는 공통된 현 상이다. 그러나 근래 우리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따돌림 현상은 몇 가지 다른 심각성을 안고 있다. 은밀히 이루어지는 집단 따돌림이 매우 집요하고 잔인 하다. 가해 학생들은 별 죄의식도 없다. 따돌림에 동조하는 학생들도 그저 장난으로 여 긴다. 잠시 따돌리다가 미 안한 마음에 다시 어울려 놀던 우리의 어린 시절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집단 따돌림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먼저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빈도나 유형을 파악하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확인하는 일이 예방과 대응 전 략 수립의 기본이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학생들과 교사와의 상담, 관련 학부모들과 교사가 함께 논의하는 장 을 마련해야 한다. 이 같은 상담을 통해 피해 학생을 돕고 가해 학생들을 선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실 이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해 집단 전체를 선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 다. 또한 피해 학생과 학부모, 교사는 함께 따돌림을 당하는 직접적인 이유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원인이 학교 를 비롯한 외적 요인에 있다면 전학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때로는 피해학생 의 성격적 문제나 문제 행동이 다소의 원인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라도 피해 학생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식의 접근은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되 지 않는다.
-피해 학생을 돕고 근본적으로 집단 따돌림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근본적으로 우리의 교육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 경쟁만이 가득 찬 입시 위주의 교 육에서 탈피해야 한다. 그러 나 이런 교육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선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소집단 활동을 통해 청소년 들이 상호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열정과 관심을 가지고 지도해야 한다. 이런 건강한 모임을 통해 남을 배려하고 상대의 아픔을 공감할 줄 아는 정서적인 교육이 이루 어 질 수 있다. 물론 피해자들도 이를 통 해 부족한 대인관계 기술을 배우고 자기 확신감을 회복할 수 있다.
청소년들이 집단 따돌림과 같은 악의적인 사회성을 키운다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 이다. 이는 더불어 사는 사 회라는 중요한 가치관을 가르치지 못한 기성세대의 책 임이기도 하다. 이제는 청소년들이 아름다운 학창시절의 추억을 갖도록 그 환경을 마련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