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실종 청소년이 위험하다] ①사회가 손 놓은 법망 밖 청소년
가출·실종 신고에도, 교육 당국의 장기결석전수조사에도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법망 밖 청소년’들이 있다. 이들은 범죄의 피해자나 가해 당사자가 된 뒤에야 실체가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다. 본보는 5회에 걸쳐 ‘법망 밖 청소년’의 실태와 임시방편적인 정부 당국의 대처, 그리고 이들을 발굴·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다루고자 한다.
지난 2월경 대전의 한 경찰서로 15살 혜린(가명·여)이가 경찰관에 임의 동행돼 왔다. 제3자가 분실한 신용카드를 주워 결제하다 적발된 혜린이는 학교전담 경찰관과의 면담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가출소녀였던 혜린이었지만 정작 가출이나 실종신고가 되지 않은 것이다. 또 교육당국의 장기결석전수조사에서도 파악되지 않았다. 미성년자인 혜린이가 사회의 무관심 속에 오랜 시간 ‘법망 밖 청소년’이었음이 드러난 순간이다.
혜린이같이 법망 밖에 놓인 청소년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는 상태의 청소년들 중에서도 특히 범죄에 취약한 이들로 손꼽힌다. 가출청소년이나 학교 밖 청소년 중 상당수는 정부당국이 신고·조사를 통해 행적을 파악하는 등 사회 법망 안에 있지만 신고·조사에서 누락된 ‘법망 밖 청소년’은 최소한의 보호 조치마저 받지 못한 채 범죄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학교 밖 청소년 현황(2013년)’에 따르면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 36만 9000명 중 약 20만 5000여 명의 실태가 미확인 상태다. 이중 학업형(12만 1000여 명)과 직업형(4만 6000여 명)을 제외한 3만 7000여 명의 무업형·비행형 중 상당수가 ‘법망 밖 청소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혜린이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소녀가 ‘법망 밖 청소년’이 된 데에는 가족과 사회의 방관이 한몫을 했다. 혜린이는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당했다. 어머니는 애착이 없었다. 가정이 손을 놓은 소녀에 대해 정부당국도 손을 잡지 않았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가출신고는 이뤄지지 않았고, 제대로 된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뒤늦게나마 혜린이가 비행 사건을 계기로 경찰에 발견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경찰관과 면담을 한 혜린이는 다시 사회의 보호망아래 들어올 수 있었다. 대전 경찰은 가정상담사에게 연계해 혜린이의 상담을 진행했고, 신규 진학한 고등학교와 협의해 기숙사에 입사, 생활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법망 밖 청소년’들이 매번 이렇게 운이 좋은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강력범죄에 노출됐음에도 그 사실조차 파악되지 않는 ‘법망 밖 청소년’들이 암암리에 존재한다. 지난해 2월 18일 오전경 충남 천안의 한 원룸에서 마약 상태의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후 암매장됐던 18살 민아(가명·여)가 바로 그랬다. 가정불화를 경험했던 소녀의 학업 기록은 지난 2013년 2월을 끝으로 끊긴다. 이후 소녀는 학교란 틀을 벗어나 노래방 도우미를 전전했다. 소녀가 밤거리 삶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사회는 철저히 방관자였다. 학교를 이탈한 소녀의 존재를 교육당국은 파악하지 못했다.
부모를 비롯한 누구도 사라진 소녀에 대해 가출·실종 신고를 하지 않았다. 신고가 없었기에 관련한 경찰의 조사 또한 없었다. 소녀는 그렇게 정부당국의 가출·실종·결석 조사조차 받지 않는 최소한의 법망에서 이탈했다. 안전망이 해제된 소녀에게 강력범죄가 덮쳤다. 소녀는 노래방 업주에게 살해당했고, 타지에 암매장됐다. 뒤늦게 풍문을 접하고 수사를 시작한 경찰에 의해 1년 후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기 전까지 사회는 소녀의 죽음에 방관자였을 뿐이다.
여기서 끝일까. 법망 밖 청소년에 대한 우리사회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가출을 했거나 학교에 나오지 않음에도 가출·실종신고가 돼 있지 않는 청소년(법망 밖 청소년)등은 파악 자체가 힘들다”며 “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게 큰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충남의 한 쉼터 관계자도 “장기간 가출에도 불구하고 부모나 학교가 관여하지 않을 때 (법망 밖 청소년 이란)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이로 인한 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곽진성 기자 pen@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