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자살 관련 요인
청소년 자살과 다양한 요인의 관련성을 파악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사회경제적 ·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데, 실태와 연관 지어 다양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생활에서 부정적인 사건과 가족 환경상의 문제점은 자살 위험성을 증대시키고, 정신의학적 · 심리적 요인도 유의미하게 영향을 미친다. 심리적 부검 방법을 점검할 필요가 있고, 실질적으로 적용 가능한 자살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
사회경제적 · 교육 요인
아동 청소년 자살 문제의 중요성에 따라 정신의학, 심리학, 청소년학, 사회복지학, 교육학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우선, 성별에 따른 차이를 살펴보기로 한다.
아동 청소년의 자살은 남녀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인다. 대부분의 연구에서 여자 청소년은 남자 청소년에 비해 자살을 생각하는 빈도가 높고(Baldry & Winkel, 2003; 김지수, 2012; 전영주 · 이숙현, 2000), 자살 시도(suicidal attempts)와 자해 행동(self-harm)도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Makikyro et al., 2004). 그러나 실제 자살 사망자 수는 남자 청소년이 더 높게 나타난다(Byard et al., 2000).
우리나라의 청소년 자살은 독특한 남녀 차이를 보인다. OECD 회원국 10대 자살자의 남녀 성비가 2.5:1인 데 비해, 2015년 상반기(1~7월) 국내 청소년 자살자의 성비는 1.2:1이다(교육부 · 자살과 학생정신건강연구소, 2015). 또한 OECD 청소년 자살률과 대비해, 우리나라 남자 청소년의 자살률은 낮은 데 반해 여자 청소년의 자살률은 높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는 높은 여자 청소년의 자살률과 대등한 남녀 비율을 보인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
자살률과 관련해 사회 · 경제 양극화와 불균형 문제가 자주 언급된다. 사회경제적 요인은 아동 청소년 자살률과 어떠한 관계를 가질까?
한국의 아동빈곤율은 2006년부터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는 아동빈곤율만으로 빈곤 아동의 삶이 개선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진단한다(정은희 외, 2013). 아동빈곤율은 소득을 기준으로 살펴보기 때문에 삶의 실태를 알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아동빈곤율의 변화는 낮은 소득계층의 출산율 변화 및 중위소득계층의 감소로 실제 빈곤층의 현실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도록 왜곡할 수 있다. 즉, 한국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대체로 좋아졌다고 하더라도, 소득만을 기준으로 청소년의 삶이 개선되었는지 살펴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
해외 연구에서는 사회계층이 낮을수록 청소년의 자해 행동과 자살 시도가 높게 나타난다고 보고된 바 있다(Burrows & Laflamme, 2010). 또한 양육자로서 아버지의 낮은 교육 수준과 낮은 경제 수준에 대한 스트레스와 걱정이 청소년의 자살 생각과 유의미한 관련이 있다고 일관되게 보고되고 있다(Andrews & Lewinsohn, 1992; Roberts et al., 1997).
이러한 해외 연구 결과는 한국 청소년의 자살 실태와는 조금 다르다. 2014년(1~12월)과 2015년 상반기(1~7월) 동안 발생한 학생 자살은 총 150건이다. 경제 상황에서 중소득가구(63.3%)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했고, 그다음이 저소득가구(22.0%)였다. 특징적으로, 저소득가구의 남자 학생(15.7%)보다 여자 학생(33.3%)에서 자살이 더 많이 발생했다(교육부 · 자살과 학생정신건강연구소, 2015). 현실을 파악하는 데 좀 더 다양한 요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정적인 생활 사건과 가족 환경
가정을 행복하게 지키는 것은 성인으로서 본인의 행복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지만, 자기 가족 구성원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가정 폭력과 청소년 자살 간 명확한 관련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Baldry & Winkel, 2003).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체적 학대와 자살 생각(suicidal ideation) 간 관련성 또한 국내외에서 보고되고 있으며(Gibb et al., 2001; 박경, 2005, 박재연, 2009), 성적 학대와 자살 행동 간 연관성 역시 일관되게 보고되고 있다(Esposito & Clum, 2002; Gibb et al., 2001).
자살 행위(suicidal behavior)는 연속적이고 복합적인 개념(O’Carroll et al., 1996)으로, 자살로 사망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자살을 생각하거나 계획하는 과정 속에서 주변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많은 연구에서 가족 구성원 중에 자살한 사람이 있는 청소년의 경우 그런 경험이 없는 청소년에 비해 자살시도율이 높고, 자살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된다(Brent et al., 1988, 1994; Bridge et al., 1997). 한국 학생의 경우 자살한 학생의 4.0%가 가까운 주변인(부모, 친인척, 친구)의 자살 사건을 경험한 것으로 집계되었다(교육부 · 자살과 학생정신건강연구소, 2015).
남녀 간 차이는 없었으나 초등학생 중 자살한 학생의 경우 주변인의 자살 사건 경험(50.0%)이 다른 중학생(13.3%), 고등학생(5.3%)보다 월등히 높았다. 자살한 초등학생의 경우, 자살이 충동적으로 실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되었다. 자살하는 학생들은 유서 또는 기록을 남기거나 구두로 암시(예, 하늘을 나는 기분은 어떨까?)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자살한 초등학생 중 어떤 형태로든 암시를 남긴 학생은 33.3%로, 중학생 68.2%, 고등학생 60.0%에 비해 현격히 낮았다.
사망, 별거, 이혼 또는 유기로 인한 가족 구성원의 상실, 특히 정서적 · 물질적 지지를 제공해 주는 사람의 상실은 청소년의 자살 행동과 관련이 높다(Brent et al., 1993; Gould et al., 1998). 자살과 가족 구성원의 상실 특히 가족 해체의 관련성은 일관되게 보고되고 있다(Brent et al., 1993; 1994; Gould et al., 1998). 이러한 가족의 해체는 청소년의 자살 관련 행동을 높이는 데 영향을 준다.
그러나 실제 자살 건수를 파악하는 데는 다른 해석도 필요하다. 한국 학생 자살과 관련해 자살 학생의 68.7%는 양친 가정이고, 31.3%는 비양친 가정이었다(교육부 · 자살과 학생정신건강연구소, 2015). 특히 비양친 가정에서 자살한 여자 학생(36.7%)이 자살한 남자 학생(27.8%)보다 높았다. 한국 여학생의 경우, 가정의 사회경제적 요인과 환경적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소년에게 학교는 배움의 장소이자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다양한 인간관계를 형성 · 발전시키는 공간이다. 학생 신분에서 또래와 원만한 대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중요한데, 청소년의 자살 사고와 친구 관계에서 발생하는 따돌림, 괴롭힘, 폭력 등은 유의미한 관련성이 있다(문경숙, 2006; 우채영 외, 2010).
이 밖의 사회적 요인으로 대중매체의 유명인 자살 보도를 들 수 있다. 유명인의 자살을 보도하거나 청소년의 자살을 보여 주는 TV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 1~2주 동안에 청소년 자살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Pfeffer, 1989). 신문기사, TV 보도, 소설을 포함하는 대중매체와 청소년 자살도 유의미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김미경 · 이은희, 2011; 정익중 외, 2010). 특히 한국의 경우 그동안 많은 연예인과 유명인의 자살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이에 대한 언론 보도의 문제점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성인 자살에 비해 좀 더 충동적인 성향이 높은 청소년 자살 문제와 관련해 미디어의 신중한 역할이 요구된다.
정신의학적 · 심리적 요인
자살은 다양한 요인이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사건으로, 특히 정신의학적 · 심리적 요인과 연관성이 높다. 먼저 한국 학생의 실태는 어떠한지 살펴보자.
2005년 서울 지역 초 · 중 · 고등학생 2672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정신질환 유병률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25.7%가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Attention 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적대적 반항장애, 품행장애(Conduct Disorder)와 같은 행동 측면에서 장애를 갖고 있었다(학교보건진흥원, 2005). 23.0%는 특정 공포증, 사회공포증과 같은 불안 장애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우울증은 7.4%로 집계되었고, 최소 한 가지 이상의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아동 청소년의 비율은 전체의 26%에 해당했다.
개별 문제를 살펴보면, 특정 공포증(15.6%), ADHD(13.3%), 적대적 반항장애(11.3%), 틱장애(3.9%), 사회공포증(2.5%)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우리나라 아동 청소년의 경우도 외국과 유사하거나 좀 더 높은 정신질환 유병률을 보이고 있으며 적어도 4명 중 1명 이상은 정신과적 질환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소년은 성인으로 나아가는 전 단계로 심신의 건강이 중요한 시기인데, 다른 연령층에 비해 오히려 더 취약하다.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우리나라 청소년(중1~고3)의 건강 행태를 알아보기 위해 실시하는 ‘청소년 건강 행태 온라인 조사’에 총 57만8200명의 청소년이 참여했고, 조사 결과 우리나라 청소년의 스트레스 인지율과 우울감경험률, 자살생각률은 성인(19세 이상)의 수치에 비해 매년 꾸준히 높은 추세를 보였다(교육부 · 보건복지부 · 질병관리본부, 2014).
우울은 청소년 자살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전국을 대상으로 2007년 총 7만4698명(중1~고3)이 참여한 ‘청소년 건강 행태 온라인 조사’에서 우울은 남녀 구분 없이 자살 생각과 유의미한 관련성이 있었다(이상구 외, 2011). 2006년 총 7만1404명이 참여한 조사에서도 우울감 경험 여부와 자살 시도(suicide attempts) 간에는 높은 연관성이 있었다(박은옥, 2008). 중학생(1~3학년) 600명과 소년원, 분류심사원에 재원 중인 비행청소년 37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연구에서도 자살 시도와 우울 성향 간의 관계는 유의미했다(김현실, 2002).
청소년 자살을 이해하는 데 우울감 외에 ‘무망감(hopelessness)’을 들 수 있다. 무망감은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신이어느 누구도 불행이나 고통을 변화시키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의미한다(Brent et al., 1986). 이것은 청소년과 성인의 자살 행동을 예측하는 데 우울보다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Beck et al., 1993).
블루멘탈(Blumenthal, 1990)은 정신장애가 있는 청소년 66명을 대상으로 10년 동안 종단연구를 진행한 결과, 청소년의 무망감 정도가 자살행동의 91%를 예측한다고 했다. 또한 한국의 특수한 상황적 요인으로 ‘학업에 대한 부담’ 변수는 국내 청소년 자살 생각을 설명하는 주요 요인이다(김순규, 2008).
청소년 자살 사건의 원인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자살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자살자에 대한 심리적 부검(psychological autopsy)이 제시되었고, 국내에서도 정부 주도로 몇 차례 단기적으로 진행되었으나, 아직까지 청소년을 대상으로 심리적 부검이 점검되지는 않았다(권호인 외, 2014). 계획안만 표류하는 가운데 안타까운 자살 사건은 멈추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심리적 부검 방법의 필요성만 피력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적용 가능한 자살 예방 대안이 필요하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청소년 자살 관련 요인 (자살 예방 커뮤니케이션, 2015. 11. 1., 커뮤니케이션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