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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7-17 15:39
한겨레 협회 인터뷰] ‘늦은 퇴근’ 맞벌이 가정 아이들, ‘학교 폭력’ 빈도 높다
 글쓴이 : 한국청소년…
조회 : 19,439  
141380999149_20141021.JPG» 청소년 문제 전문가들은 “부모와 살면서도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정서적 문제를 겪는 일이 많다”고 말한다. 사진은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학생들. 자료사진 

중학교 2학년인 선미는 왕따를 당한다. 자기와 친해지려는 친구들의 선의도 믿지 못할 정도가 됐다. “처음엔 잘해주다가 나중에는 배신할 것 같아서 친구는 그냥 안 사귄다”는 선미는 부모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굳게 믿는다.

“좋아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이 있으면 자주 보고 싶지 않아요? 내가 그렇게 소중하면 일찍 들어와서 나랑 같이 이야기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녜요? 엄마 아빠는 항상 밤늦게 들어왔어요. 내가 보기 싫어서 그런 거라는 걸 난 다 알고 있어요.”

학교 부적응 문제로 전문 상담사를 찾은 현철(15·가명)이는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자퇴를 선언했다.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어 학교에 갈 수가 없다”는 현철이는 전형적인 ‘소진증후군’(한 가지에 몰두하다 어느 순간 회의를 느끼고 무기력해지는 증상)’ 증세를 보인다. “엄마와 아빠는 늘 밤늦게 들어오세요. 열심히 공부해도 나한테 관심 없어요. 엄마 아빠가 행복해보이지도 않아요. 죽어라 공부해서 좋은 회사 취직했는데 저렇게 살까봐 무서워요.”

장시간 노동은 자녀의 시간까지 빼앗아간다. 청소년 문제의 뿌리 중 하나는 부모와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유년 시절에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 맞벌이가 중2병 원인? 최근 학교폭력의 원인을 맞벌이 가정에서 찾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학교폭력 가해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가정적 요인 연구’ 논문을 쓴 강소영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연구원은 “학교폭력 60여건 정도에 대한 기록을 검토해 보니, 60% 정도는 부모가 모두 있는 양부모 가정이었다. 이 가운데 75%는 맞벌이다. 부모가 바빠서 신경을 잘 못 쓰는 경우에 아이들이 탈선한다는 게 현장의 이야기”라고 했다.

야근 내몰린 맞벌이
아이들은 정서불안
학교폭력 빈도 높아

작년 경기새울학교 67명 중
35명은 부모가 있고
그중 23명이 맞벌이 가정 자녀

학교폭력 가해 학생과 학교 부적응 학생들을 단기 교육하는 경기새울학교를 지난해 거쳐간 67명 가운데 35명(52.2%)은 부모가 모두 있었고, 이 가운데 23명(65.7%)은 맞벌이 가정 자녀다. 이 학교의 최기영 전문상담교사는 “‘위기 청소년’은 한부모가정이나 조손가정에서 많이 나온다는 통념이 있다. 하지만 최근 경향을 보면, 맞벌이로 부모가 부재할 때 정서적으로 불안한 아이들이 학교폭력 등의 위기 행동에 노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도연 한국청소년자살예방협회장은 “어릴 때 부모와 충분히 시간을 갖지 못해 심리적 박탈감을 지닌 아이들이 사춘기에 문제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사람들은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자기부정의 감정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 맞벌이보다 야근이 문제 전문가들은 자녀들을 중2병으로 내모는 진짜 원인은 맞벌이 자체라기보다는 장시간 노동이라고 지적한다. 양쪽 모두 퇴근이 늦으면 저녁과 밤 시간대에 자녀 돌봄에 공백이 생기는 게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해 내놓은 ‘청소년의 학교폭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분석’ 보고서를 보면. 학교폭력 경험이 있는 학생 어머니의 월평균 노동시간(138.2)이 그렇지 않은 학생 어머니의 월평균 노동시간(127시간)보다 11시간 많다.

141380979829_20141021.JPG»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이소영 순천향대 부속 부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홍보이사)의 연구 결과도 맥락이 비슷하다. 경기도 210개 초등학교 1학년과 4학년 학생 29만8916명 중에서 과잉행동장애를 보이거나 정서·행동발달 검사에서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학생 3270명을 조사했더니 혼자 있는 ‘무감독 시간’이 길수록 공격적 행동이나 비행, 우울과 불안 증세 위험이 높았다.

상담 전문가로 2만명이 넘는 청소년을 만나온 이창욱 마인드케어연구소장은 “모든 맞벌이 가정에서 사춘기 자녀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다. 맞벌이 부모가 일상적으로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경우에 갈등이 빚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부모가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못 낸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학부모의 학교 참여가 집단 괴롭힘에 대해 미치는 영향’ 논문을 쓴 이창훈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일하는 부모는 그렇지 않은 부모보다 학교 행사 참여 빈도는 물론이고 선생님과 상담하는 횟수, 통화 빈도도 적다. 문제는 자녀가 이런 모습을 보면서 부모의 사정을 이해하기보다 ‘내 부모는 나한테 관심이 없다’고 인식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 학교폭력과 장시간 노동 “만약 엄마 아빠가 방과후에 집에서 날 기다려줬다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았을 거예요.” 중학교 3학년 성민(16·가명)이 부모는 생산직으로 일하면서 늘 밤 9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다. 성민이는 냉장고에서 차가운 반찬을 꺼내 동생과 둘이 저녁밥을 먹는 게 싫어서 아예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4개월간 가출한 적도 있다. “집 같지가 않아요. 밥도 같이 안 먹는데 그게 무슨 가족이에요?”

경기 초등교 1·4학년 
과잉행동장애 등 3270명 조사 
혼자 있는 시간 길수록 고위험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장시간 노동은 ‘밥상머리 교육’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특히 ‘자녀와 보내는 시간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통념은 장시간 노동이 보편화한 사회에서 시간 자체가 부족한 현실을 은폐한다. 이소영 교수는 “아이들에게 10분만 집중하면 애착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 장시간 노동에 지친 부모가 퇴근해서 아이와 집중해 대화를 할 수 없다. 5분이나 10분 얘기한다고 아이의 욕구를 읽어낼 수도 없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애착이 형성되려면 시간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는 2010년 주야 맞교대(주간 12시간, 야간 12시간 근무)에서 주간 연속2교대(주간 1조 오전 8시~오후 4시, 주간 2조 오후 4시~자정)로 근무 형태를 바꾼 사업장의 노동자 268명을 조사했다. 30대의 60%는 ‘가장 긍정적 변화’로 ‘자녀관계 개선’을 꼽았다. 연령이 높을수록 근무형태 변화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졌는데, 40대는 39.5%, 50대는 11.2%에 그쳤다. 연구를 진행한 김보성 연구원은 “집중적 양육이 필요한 어린 자녀를 둔 가족일수록 관계가 돈독해지는 경험을 많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매일 일정 시간을 같이 보낸다는 것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애착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 안정적 애착은 올바른 인성 발달과 정신건강을 위한 필요조건이기 때문에, 일하는 부모가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을 양적·질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명선 김효진 기자 torani@hani.co.kr

저소득 부모들, 어쩔 수 없이 ‘밤까지 노동’

한국 노동자 4명중 1명은 저임금
피겨 꿈 키워주려 언어치료 해주려
‘투잡’에 초과근로에 ‘장시간 노동’ 

초등학교 5학년 첫째와 2학년 둘째, 돌이 갓 지난 셋째까지. 다둥이 아빠 박창민(45·가명)씨는 저녁 시간에 ‘투잡’을 뛴다. 조경회사 현장감독으로 일하면서 받는 월급 200만원은 다섯 식구 살림에 턱없이 부족하다. 오전 6시4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한 뒤 밤 9시부터 자정까지 대리운전을 한다. 그렇게 하루 15시간을 일하고 집에서는 잠만 잔다. 그는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대리운전 수입이 월 100만원에서 반토막이 났다. 피겨 선수가 되고 싶다는 첫째의 꿈은 못 이뤄줄 것 같다”고 했다.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는 저소득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을 병행하거나 초과근로를 하며 장시간 노동에 내몰린다.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려면 ‘임금 현실화’부터 해결해야 하는 셈이다.

한국전력 직원들 중에는 초과근로를 통해 추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단전원으로 업무를 바꾸는 아빠들이 적지 않다. 송태수(45·가명)씨는 6년 전 전기요금 고지서 발송과 전기계량기 검침 업무를 하다가 전기를 끊는 단전 업무로 갈아탔다. 송씨는 일주일에 두 차례 밤 11시까지 초과근로를 하고 많게는 월 100여만원을 더 받는다. 그는 “월 200만원으로는 먹고 살 수만 있지 큰아이 언어치료 비용을 댈 수가 없었다”고 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고용전망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전일제 노동자 임금 중간값의 3분의 2 이하) 비율은 전체 노동자의 25.1%로 미국과 함께 가장 높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노동자 3717명을 조사한 ‘노동환경실태 결과 보고서’(2013)를 보면, 이들의 평균 임금은 196.5만원에 불과하다. 박준도 노동자운동연구소 기획실장은 보고서에서 “월 180만원을 받으려면 일주일에 20시간 이상 연장근로를 해야 한다. 200만원을 벌기 위해선 밤늦게까지, 휴일에도 일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조사에서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일한다고 답한 노동자는 10.5%(265명)에 달했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

 



(*한겨레 신문 2014년 10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