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시간씩 공부했다. 특목고 진학을 위해서였다. 일부러 공부 잘하는 친구들을 사귀었다. 선생님에겐 항상 칭찬받으려 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마다하고, 강원도 춘천에서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공간’을 만들고 있는 허일정양(16)의 1년 전 모습이다. ‘나는 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왜 외교관이 되고 싶어했지?’ 도서관을 자주 찾았던 허양은 독서량이 많아지면서 처음으로 “내 삶이 낯설게 보였다”고 했다. 허양은 고교 진학을 그만두기로 했고, 부모도 동의했다. 이후 허양은 함께할 친구들을 찾아 나섰다. 그가 만난 학교 밖 친구들은 “부당한 대우와 편견 때문에 자존감이 낮고, 친구를 사귈 기회를 찾기도 쉽지 않은데 함께 모여서 문제를 풀고 싶다”고 했다.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배우고 일할 권리를 주자는 목적으로 카페 운영을 계획 중인 ‘우물밖청개구리들’ 중 5명(왼쪽부터 조예린, 강수현, 용경민, 허일정, 신혜린)이 17일 강원 춘천시 중앙시장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도은 기자
▲ 고등학교 포기한 허일정양 “공부만 한 내 삶이 낯설어” 뜻 맞은 학생 6명 찾아 결성 벼룩시장·길거리 공연 등 다양한 경험으로 꿈 키워
지난 8월 ‘우물밖청개구리’가 결성됐다. 학교 밖 청소년 3명, 고등학교에 안 갈 예정인 중학생 1명, ‘대학에 가야 한다’는 주변의 주문이 싫었던 고등학생 2명이 모였다.
우물밖청개구리들에게 ‘보호자’는 없다. 모임 결성부터 이제껏 스스로 계획하고 진행했다. 매주 2차례 회의를 열고, 회의가 끝나면 ‘그림 그리기’ ‘강연법’ 등 각자의 재능을 나누며 공부한다. 17일 열린 회의는 3시간 동안 이어졌다. ‘소셜벤처 경연대회 결선’ ‘벼룩시장 푸드코트 사업 반성’ ‘춘천시장 산책코스 찾기 프로젝트 진행’ 등 안건이 넘쳤다. 오는 12월21일에는 ‘돈꾸지 말고 꿈꾸자’라는 주제로 ‘대학’이 아닌 꿈에 대해 학교 안·밖의 청소년들이 만나는 꿈파티도 기획하고 있다.
내년까지 춘천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해 ‘사람이 있으면 배움이 있다’ ‘내 실패를 위해 도와줄래요’라는 슬로건으로 ‘둥지’를 만드는 목표도 세워두었다.
어른들은 우물밖청개구리들이 왜 학교를 다니지 않는지를 궁금해한다. 이들은 “꿈을 이루는 데 지금의 고등학교는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춘천에 청소년 전문 심리상담센터를 만드는 게 꿈인 강수현양(17)은 지난 2년간 심리학 강의를 듣고 심리상담사 보조 경험을 했다. 그리고 올해 모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합격했다.
작곡가가 꿈인 조예린양(16)은 지난여름 우물밖청개구리 길거리 공연에서 기타·키보드 연주에 보컬까지 맡았다. 조양은 “점수로 평가받는 무대가 아니라 마음 편히 즐기는 공연을 처음 해봤다”고 말했다. 신혜린양(14)은 “영화음악감독이나 음향 엔지니어가 되려고 독일로 유학갈 예정인데, 대학 입시에 시간을 뺏기기보다 일단 10대 때는 독서, 여행, 사진, 스킨스쿠버 등 다양한 경험으로 역량을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허양의 꿈도 바뀌었다. 막연한 외교관에서 ‘실천하는 철학자’가 되길 원한다.
“너희 활동이 학교 잘 다니는 애들 자퇴를 조장하는 거 아니니?”
강원도교육청 정책 자문을 위해 불려간 자리에서 우물밖청개구리들이 받은 질문이다. 조양은 “청소년이 학교를 나온다면 문제는 학교에 있는 것”이라며 “우리는 학교를 나왔지만 방치되고 있는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대안을 고민한다”고 말했다. 허양은 “학교를 다니는 것이 도피일 수 있다”며 “누구나 멋진데 자신이 멋지다는 걸 알 기회가 없다. 대안공간을 통해 모두 내면의 본질을 알 수 있는 배움의 기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