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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7-27 16:41
아이와 더 오래, 더 많이, 더 가까이… 우리 아빠가 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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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한국청소년…
조회 : 16,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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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자녀와의 애착관계 형성에 적극적인 아빠들 ㆍ초등·중학교선 ‘아버지회’ 확산, 안전지도뿐 아니라 책 읽어주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 참여
서울 가락동에 사는 최원경씨(38·알리앙스프랑세즈 직원)는 알람소리에 맞춰 매일 아침 6시50분에 잠에서 깬다. 세수하고 밥을 지은 후 아내를 깨워 같이 식사한다. 공무원인 아내가 출근한 직후인 7시30분,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 민준(7)을 깨운다. 밥을 먹이고 설거지를 한 다음 씻기고 옷을 입혀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학교까지 손을 잡고 바래다준다. 서울 명동 부근에 있는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 저녁 8시. 옆단지에 사는 부모님 댁에서 민준을 데려와 함께 목욕하고 간식을 챙겨주고 학교 과제를 봐준다. 레고 조립이나 말타기 등 민준이 좋아하는 놀이를 함께한 후 민준의 침대에서 자신이 직접 전래동화 등을 각색해 만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꾸며내는 게 쉽지는 않지만 새 이야기에 들뜨는 아들의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 등교할 때, 함께 목욕할 때, 퇴근 후 놀아줄 때 민준은 “아빠에게만 하는 비밀”이라며 종종 귓속말을 한다. 주말에는 민준을 데리고 야외 체험학습에 나선다. 미리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공부한 후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다닐 때 설명해준다. 이번 주말엔 남쪽지방으로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
“아빠의 삶은 없냐고요? 가끔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죠. 하지만 음주가무를 좋아하지 않는 데다 어려서부터 민준을 돌보다보니 이젠 아이 돌보기가 취미가 됐어요(웃음).”
그가 두 팔 걷고 육아에 직접 나선 것은 민준이 태어나고 얼마 안돼서부터다. 산후조리차 부산 친정에 내려가 있던 아내와 아이를 만나러 갔다가 3개월된 민준이 아빠를 알아보지 않자 크게 낙심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 명원초등학교 도서관에서 학부모 오세익씨(48)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이 학교 아버지회는 격주로 ‘책 읽어주는 아빠’를 마련해 아이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 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
“순간 영화 <스타워즈>의 명대사인 ‘I’m your father(내가 너의 아빠다)’가 떠올랐어요. 육아서적 탐독은 기본이고 밤낮이 바뀐 아기가 밤에 깨서 울면 일어나 안아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분유 먹이는 일을 도맡았죠. 제가 잠귀가 밝거든요. 얼마 후부턴 민준이 ‘앵’ 하기만 해도 배 고파서인지 놀고 싶어서인지 기저귀 갈 때가 돼서인지를 구별하겠더라고요.”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그는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1년간 하루 24시간 양육에만 매달렸다. 정성이 통해서였을까. 민준이 말문을 트고 처음 한 말이 엄마가 아니라 “아빠”였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달래면 안 통해도 그의 손만 닿으면 울음을 뚝 그치는 것도 신기했다. 다시 취직을 했지만 최씨는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학교에 데려다주는 건 아내에게 양보하지 않았다. 그의 블로그에는 지난 7년간 민준의 성장과정이 사진과 동영상, 글로 빠짐없이 기록돼 있다. 2011년에는 보건복지부가 아빠의 육아 참여 독려를 위해 만든 ‘100인의 아빠단’ 1기로 선정됐다. 3년간 아빠단 활동을 계속해온 그는 “육아에 정성을 쏟는 아빠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보육정책 등에 대해서도 활발히 논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부보다는 바른 인성을 키우는데 초점을 맞춰 민준을 양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아들이 훗날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며 만족해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희망하죠.”
■ ‘스칸디대디’ ‘프렌디’로 불리는 3040 아빠들
아빠들이 달라졌다. 가부장적이던 과거 산업화 시대의 아버지들과 달리 요즘 30, 40대 아빠들은 자녀들과의 애착관계 형성에 적극적이다. 되도록 긴 시간을 자녀와 보내려 노력하고 과도한 스킨십을 부자연스럽게 느끼지 않는다. 자녀의 고민, 학교생활, 친구관계 등 많은 것을 공유하려 한다. ‘스칸디대디’(Scandi Daddy·육아에 적극 참여하며 자녀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교감하는 북유럽 아빠들 통칭), 프렌디(Friend와 Daddy를 합성한 신조어·친구처럼 친근한 아빠)란 말이 유행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특히 1990년대 중반 20대를 보낸 X세대를 시작으로 이런 모습이 두드러진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자기 중심적인 가치관을 형성하며 자유롭게 사고하는 이들은 가사분담과 공동육아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아빠는 돈만 벌어오면 되고, 양육은 엄마 몫이라는 이전 세대의 인식에서 크게 달라진 양상이다.
육아에 정성을 쏟는 아빠들의 증가는 사회 곳곳에서 감지된다. 서점가에는 최근 몇년새 아빠의 육아를 돕는 국내외 서적들이 부쩍 늘었다. ‘아빠 육아’를 주제로 한 별도의 진열대가 등장했을 정도다. 아내가 출산한 후 육아휴직을 하는 남성도 급증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공·사기업 남성 직장인 1790명이 육아휴직을 해 전년(1402명)보다 27.7% 증가했다. 안전행정부에 의하면 남성 육아휴직 공무원(교사 포함)도 지난해 2297명으로 2011년(1237명)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전체 남성 육아휴직자가 4000명을 넘긴 것이다.
■ 남성 기호 반영된 육아용품·육아교실 인기
백팩형 기저귀 가방, 언뜻 배낭처럼 보이는 디자인의 아기띠 등 아빠의 기호가 반영된 육아용품의 반응도 뜨겁다.
각 백화점 문화센터에서는 프라모델 만들기, 미술놀이, 요트 타기, 스내그 골프, 캠핑, 요리 교실 등 아빠와 자녀가 함께하는 프로그램이 잇따라 개설돼 아빠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에서는 이번 여름시즌(6~8월) 아빠와 자녀가 함께하는 강좌수가 전국적으로 각각 200여개와 120개에 달한다. 전년 동시즌 대비 각각 50%, 20% 증가한 수치다. 3살된 아들과 함께 경기 일산 현대백화점 킨텍스점 문화센터에서 ‘크레아트’를 수강하는 이현호씨(36·자영업)는 “평일에는 시간을 내기 어려워 주말이라도 아이와 놀아주기 위해 등록했다”며 “아내의 압박도 있었지만 주변 친구들이 너나할 것 없이 영·유아 교육열이 뜨거워 자연스럽게 자극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초등·중학교에서는 아버지회가 확산 중이다. 치맛바람은 옛말이고, 긍정적 의미의 ‘바짓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2010년 처음 결성된 서울 마장초등학교 아버지회의 회장 민운기씨(41·자영업)는 “초등학교 교원 대부분이 여교사인 데다 사교육 등 아이의 학습 주도권을 쥔 것도 엄마들이다 보니 아이들의 인성발달에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해 아버지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회는 등교시 교통지도와 방과후 안전지도, 체육대회 등 학교행사 도우미 역할 그리고 가족캠프 등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3 딸과 중1 아들이 다니는 서울 신동중학교에서 아버지회 회장을 맡고 있는 변상규씨(44·교수)는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됐을 때는 아버지들이 새삼 가까워지려고 노력해도 이미 늦는다는 게 우리 회원들의 공통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학교 일에 참여하고 아버지들 간 네트워크가 생기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를 잘 알게 됐고 관계도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변씨의 딸 지현양(16)은 “원래 아빠는 우리에게 항상 말씀도 재미있게 하고 잘해줘 집안 분위기가 좋았다”며 “아버지회 활동까지 하는 아빠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아버지회의 활동분야는 학교마다 다르다. 주로 방과후 안전지도 등 몸을 쓰는 역할을 맡지만 서울 명원초등학교에선 격주로 진행되는 ‘책 읽어주는 아빠’ 프로그램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 13일 오전 10시30분 명원초 1층 도서관에서 그 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큰 책상을 중앙에 놓고 15명의 어린 학생들이 오세익씨(48·학원 운영)를 둘러싼 채 앉아있었다.
“오늘은 재미있고 지혜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거예요. 아빠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잘 듣고 우리 함께 생각해보기로 해요.”
이 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수연양(11)의 아빠로, 아버지회 회원인 오씨가 이날 골라온 책은 <이솝우화> 중 ‘지혜로운 개구리’와 <탈무드> 중 ‘포도밭의 여우’였다. 그가 중저음의 목소리로 때론 개구리, 또 때론 여우를 흉내내며 리듬감 있게 책을 읽어나가자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읽기가 다 끝난 후에는 질문을 쏟아냈다. 오씨는 그때마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설명을 해줬다. 그가 외동딸인 수연양을 얻은 건 결혼 5년 만, 서른중반을 훌쩍 넘겨서였다고 한다.
“자상하고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아내의 배 위로 딸을 쓰다듬고 대화하고 책을 읽어주며 애정을 표현했던 그는 딸이 태어나자 업무 외 시간 대부분을 육아에 쏟을 만큼 열성적이었다. 학원을 운영해 오후 3~4시에 출근하기 때문에 다른 아빠들보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은 것도 도움이 됐다.
“아기 때부터 딸아이와 자연스럽게 친밀감을 쌓기 위해 씨름놀이를 많이 했어요. 일부러 져주죠(웃음). 같이 책도 읽고 서점에도 자주 가요. 1년에 1~2번씩은 꼭 국내외로 여행을 떠나고요. 좋은 추억을 많이 남겨주고 싶거든요. 아이가 외로울 것 같아 동생을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잘 안됐어요. 그러니까 우리 딸 외롭지 않게 제가 더 친구처럼 재미있게 놀아줘야죠.”
그가 아버지회에 가입한 것은 올 봄이다. 이전까지는 학교운영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내심 ‘학교에 더 봉사할 길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지난해 가을 아버지회가 준비한 주말 가족산행에 올랐다가 아버지회의 활약상을 목격한 후 동참했다고 한다. 그는 “최선을 다하지만 그래도 아이에겐 부족한 아빠인 것 같다.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지나치게 형성돼 아직도 엄마아빠와 떨어져 자려 하지 않는 게 걱정이라면 걱정”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서울 중랑구 열매어린이집에서 지난 13일 열린 ‘찾아가는 아버지교실’에는 14명의 아빠가 참여해 자녀들과 신나는 한때를 보냈다. 딸들과 놀아주는 김장훈씨(왼쪽 사진)와 장원희씨의 표정에서 행복감이 넘쳤다. | 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
■ ‘찾아가는 아버지교실’ 등 아빠들 참여 후끈
좋은 아빠가 되고자 하는 요즘 아빠들의 열망은 지난 13일 정오 서울 중랑구 열매어린이집에서도 확인됐다. 어린이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신나는 음악소리가 울렸다. 공공기관, 기업, 어린이집의 신청을 받아 서울시가 지원하는 ‘찾아가는 아버지교실’이 진행 중이었다. 강사의 지시에 따라 참가한 14명의 아빠들은 4~5살 정도의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풍선 띄우기 놀이를 하고 보자기를 이용한 썰매타기와 그네놀이를 했다. 아이를 태운 보자기를 양손으로 번쩍 들고 흔들어주거나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에어컨이 가동 중이었지만 아빠들의 이마엔 하나같이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그래도 얼굴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아이들이 시종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리며 즐거워했기 때문이다.
딸 보미(6)와 함께 참가한 김장훈씨(40·자동차정비업)는 “아이와 교감하는 시간을 자주 갖고 싶은데 업무로 바쁘다보니 평소 마음만큼 못해주는 게 늘 미안했다”며 “가정통신문을 통해 이런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기쁜 마음으로 참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간단한 놀이만으로도 보미가 이렇게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앞으로 더 자주 놀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진화심리학자인 전중환 경희대 국제캠퍼스 교수는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인간 등이 속하는 유인원 무리에서 아빠가 자식을 열심히 키우는 종은 오직 인간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인차가 크다고 한다. 어떤 아빠는 자식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가 하면, 어떤 아빠는 핏줄임에도 나몰라라한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아빠를 딸바보, 아들바보로 만드는 중요한 경험 중 하나는 유아기 때부터 아이와 밀착된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것”이라며 “그럴 경우 아빠의 혈류에서 황제펭귄과 같은 동물의 수컷에게서 자식에 대한 보살핌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프로락틴 호르몬이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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