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으로 희생된 한 학생의 책상 위에 조화가 놓여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친구가 ‘자살 징후’ 보이면…“자살 생각하니?” 바로 물어라
금천구, 학생들에 자살예방 교육
“막연한 희망이야기·설교는 금물
전문가에 곧바로 도움 요청해야”
전문상담교사인 인천 가좌고 송수정(33)씨는 어느 학생이 친구의 ‘자살 징후’를 알아채고 알려준 덕에 생명을 구한 소중한 경험이 있다.
2013년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청소년 자살 예방 교육을 한 직후였다. 한 학생이 다가와 “친구가 자살하려는 것 같다”고 했다. 학생은 그 친구를 송 교사에게 연결해줬다. 엄마 없이 살며 아빠의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였다. 송 교사는 “‘자살 징후가 있는 친구를 즉시 전문가와 연결하라’는 자살 예방 교육 내용에 충실한 사례”라고 했다.
국내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안타깝게도 자살이다. 통계청 자료(2012)를 보면, 청소년 10명 중 1명은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청소년의 절반가량은 고민 상담 대상으로 ‘친구’를 선택한다. 친구의 어두워진 얼굴은 매일 얼굴을 맞대는 친구가 가장 먼저 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금천구 보건소에서 ‘친구의 자살 징후에 대처’하는 청소년 자살 예방 교육이 열렸다. “친구의 변화, 평소와 다른 행동이 열쇳말”이라는 강사의 말에 남녀 고등학생 20여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을 안 먹거나 불면증이 있다거나 표정이 어둡고 여기저기 아픈 친구를 발견하면 어떻게 해야 하죠?”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요.” “막연하게 희망적인 이야기나 설교, 도덕적 판단을 해선 안 돼요. 자살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죽을 용기로 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정말 자살하고 싶어진다고 하거든요. 바로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해요. 알겠죠?”
금천구의 청소년 자살 예방 교육은 지난해 8월 중학생 30명에게 한 뒤 두번째다. 뭔가 이상한 변화를 보이는 친구를 발견하면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묻고, 그렇다고 하면 바로 ‘전문가’에게 ‘거리낌 없이’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자·전·거 대처 요령’을 배운다. 교육 내용은 매우 단순하지만 효과는 크다고 한다.
친구의 잘못된 선택을 막으려면 언어적·비언어적 자살 징후를 감지하는 게 중요하다. 밥을 거의 못 먹거나 너무 많이 먹는 경우, 잠을 못 자거나 반대로 잠을 너무 많이 자는 경우가 그렇다. 결석이 잦고, 감정 변화가 갑작스러운 경우, 잘 씻지 않는 등 외모 관리를 하지 않는 경우도 청소년 우울증의 징후다.
교육에 참여한 학생들은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 앞에서 진지했다. “친구에게 ‘정말 죽을 생각이냐’고 직설적으로 물어야 한다는 걸 새롭게 알았다” “‘자살하겠다’고 말하는 애들은 진짜 죽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8월 교육에 참여했던 신정여상 1학년 김현아(16)양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들의 친구들도 이런 교육을 들었더라면 도움이 됐을 텐데 안타깝다”고 했다.
송 교사는 “이전엔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쳤는데, 요즘은 주변 친구들에게 관심을 갖고 기꺼이 도울 마음을 내도록 가르친다. 그래야 아이들이 직접 행동에 옮긴다”고 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