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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9-25 10:20
10년 넘는 '사교육 마라톤'..중도에 쓰러지는 학생들
 글쓴이 : 한국청소년…
조회 : 17,117  

10년 넘는 '사교육 마라톤'..중도에 쓰러지는 학생들

 

 

과도한 조기교육·선행학습..'마음의 병' 시달리는 학생 많아

시험불안 클리닉·집중력 향상 프로그램 내건 정신과도 성업

 

 

 


◆ 사교육 1번지 대치동 24시 ④ 시들어가는 아이들 ◆

 


# 정 모씨(44·여)의 아들 김 모군(18)은 중학교 때까지 수재(秀才)로 유명했다. 중학교 2학년 무렵 토익은 만점을 받았고, 영문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과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를 술술 읽었다. 매일 밤 정해진 시간엔 CNN을 들었다.

수학도 잘했다. 고교 과정은 이미 한 번 훑었고, 고3 수험생도 쩔쩔매는 심화 문제도 풀어냈다. 정씨는 자신이 짜놓은 빼곡한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는 아들이 자랑스러웠고, 주변 사람들도 그를 부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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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별 맞춤형 학습법?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소아정신과가 두뇌별 맞춤형 학습법 프로그램을 간판을 통해 홍보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그러나 고등학교에 들어간 아들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김군은 "내가 공부하는 기계냐"고 소리쳤고, 이후 공부에서 손을 놨다. 학원 대신 PC방을 찾기 시작했고, 집에 오면 방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처럼 사교육이라는 바위를 10여 년간 쉼없이 밀어 올리다 지친 김군은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다.

 

 

정씨는 "아들이 머리가 좋아 일찌감치 선행학습을 시켰는데 너무 일찍 시작해 일찍 지쳐버린 것 같다"고 후회했다.

아이들이 시들어가고 있다. 김군처럼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더 잘하는 아이들과 경쟁하느라 지쳐가고, 공부에 매달리고도 원하는 성적을 내지 못하는 보통 아이들은 잘하는 아이들에게 가려 상처받고 있다.

한창 놀아야 할 시기에 밤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학업에 시달리느라 마음의 병을 얻은 아이들도 적지 않다.

 

 

◆ "마음껏 놀아보고 싶어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거주하는 정 모군(11)은 4곳의 학원에 다닌다. 영어, 수학, 중국어, 체육학원으로 이어지는 강행군이다. 집에서는 연산 학습지도 한다. 정군은 조만간 논술학원도 추가할 예정이다. 정군 어머니는 "저학년 때 미리 진도를 빼놓지 않으면 좋은 학원에 들어갈 수 없다"며 "대치동 학원가에선 아이들 반을 순전히 실력에 따라 편성하는데 제 자식이 낮은 반에 편성되길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군은 어머니의 말을 묵묵히 따르면서도 이런 말을 했다. "공부도 잘하고 싶지만, 방학 때만큼이라도 마음껏 놀고 싶어요."

 

 

◆ 그림자 취급 받는 중위권

대치동 중위권 학생들은 고달프다. '꼴찌도 공부한다'는 이 동네에서 중위권 학생들은 스포트라이트 밖에서 묵묵히 공부할 뿐이다. 수능 모의고사에서는 1~2등급이 나와도 내신은 3등급조차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수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대치동에선 내신이 타 지역보다 훨씬 까다롭기 때문이다.

 

 

대치동의 일반고에 다니는 3학년생 아들을 둔 김민진 씨(가명·49)는 "설명회나 학원이 모두 상위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2·3등급에 해당되는 학생들은 대치동에서 그림자 취급을 받는다"며 "손가락에 꼽히는 주요 대학이 아니면 재수, 삼수를 시켜서라도 될 때까지 하는 게 보통이라 고달픔이 짧게 끝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치동에서 20년 가까이 영어를 가르쳐온 강사 김기호 씨는 "대치동 중위권 학생들은 내신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일부 학부모들은 고등학교는 대치동이 아닌 다른 곳으로 보내고, 학원만 대치동으로 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 '학습 전문' 내건 정신과도

대치동에서는 신경정신과조차도 학업에 특화된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A신경정신과 병원은 최근 '시험불안 클리닉'이라는 특별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심박수 증가, 근육 경직, 빈뇨 등이 나타나는 학생들에게 뇌파 훈련, 근육 이완법, 약물치료를 제공한다. 이 병원 관계자는 "고3 학생들이 가장 많지만 초·중학생도 두루 이용한다"고 전했다.

 

 

이 병원에서 만난 학부모 김 모씨(50)는 "첫째 아이가 9월 모의고사에서 지나치게 긴장한 나머지 듣기평가를 하나도 못 들었다고 해서 방문했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첫째뿐만 아니라 둘째도 관리를 받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부 병원은 바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화상 진료'도 병행하고 있다. 10대를 넘어 유아 전문 심리상담센터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인근 한 신경정신과 병원은 최근 시험불안 클리닉과 집중력 향상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소장은 "신체적·정신적으로 아직 경쟁을 받아들이기 적절치 않은 나이에 경쟁에 내몰기 때문에 병리현상이 생기는 것"이라며 "정신적 압박에서 자유로운 학습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이은아 차장(팀장) / 김시균 기자 / 김수영 기자 / 안갑성 기자 / 박윤예 기자 / 오찬종 기자 / 황순민 기자 / 홍성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