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그냥요’를 그냥 지나치지 말자
윤다옥 교사의 사춘기 성장통 보듬기
“학교 다니기 싫어, 나 자퇴할래.” 어느 날 아이가 말했다. 이유를 묻자 “아, 그냥, 싫어”라고 한다. 아이는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렸다. 엄마는 당황해하며 일단 학교에서 허락을 받아오라며 문제를 미뤘다.
이렇게 해서 아이는 상담실까지 오게 됐다. 아이는 “공부가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꿈이 작가인데 학교 다니면서 글을 쓰려니 시간이 부족하다”, “좀 더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뒤 자퇴를 원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 물었다. 아이는 그제야 ‘대인관계 문제’를 털어놨다.
교육부가 최근에 발표한 ‘2014년 학업 중단 학생 현황 조사’에 따르면 전체 초중고생 약 628만5천명 중 2만8천명이 학교 부적응으로 학교를 떠나고 있다. 200명 중 1명꼴로 부적응을 겪다 학교를 그만두는 셈이다. 학교 부적응의 원인은 학습부진, 교우관계 어려움, 학교 규율 부정, 가정사 등으로 다양하다.
“그냥요.” 아이들이 이유를 답할 때 쉽게 하는 말이다. 이 말 안에 담긴 수많은 의미를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까. 때로는 아이 자신조차도 그 의미를 자각하지 못할 때가 있어 쉽지 않다. 그렇지만 아이가 생각지 못한 말이나 행동을 불쑥 할 때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아이 나름대로 꽤 오래 전전긍긍하며 속앓이를 해왔을 것이다.
앞서 말한 아이가 원하는 건 뭘까?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건 겉으로 드러나는 요구다. 중요한 건 그 이면의 욕구와 감정이다. 그걸 제대로 살펴보지 않으면 아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놓치기 쉽다.
이 아이의 경우 지금까지 한 번도 친구관계에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특별한 계기 없이 주변 아이들이 멀어지는 걸 느끼면서 학교생활이 불편해졌다. ‘친구를 금세 사귀지 못하는 아이는 문제가 있어’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그 상황에 놓이자 더 괴로워했다. 늘 친구들이 먼저 다가왔는데, 이제는 자신이 그들에게 들러붙어야 한다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노력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학교를 떠나고 싶어졌다.
아이는 ‘자신이 괜찮고 문제없다’는 걸 확인하는 동시에 불편하고 괴로운 상황을 회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뻣뻣하게 굴며 자신이 먼저 거리를 두었을 수도 있다. 실제 아이는 자주 지각하거나 아프다는 핑계로 조퇴나 결석을 하며 다른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남겼다. 모둠활동이나 수행평가 등 학급활동에도 빠지게 되다 보니 어느 순간 또래집단에서 배제되어 버렸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 도리어 상황을 악화시킨 경우다.
이런 아이를 돕기 위해서는 일단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의 이면에 있는 ‘마음’을 들어줘야 한다. “많이 힘들었구나”, “학교를 그만두고 싶을 만큼 생활이 불편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나 보구나”라는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이렇게 마음을 어루만진 뒤 아이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듣고 상황을 파악해 적절히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걱정스런 마음에 무조건 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윽박지르거나 설득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고집을 피우고 나약해져 있는 아이에게 홧김에라도 “네 인생이니까 네 맘대로 해”, “나중에 후회해도 난 몰라”, “그것도 못하면 앞으로 뭘 제대로 하겠니?”라고 내뱉지 않아야 한다. 또 “힘내, 조금만 더 참자, 견디자”라고 하는 부모의 위로와 격려도 별 도움이 안 된다. 이런 말을 들으면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부모가 몰라주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럴 때는 “네가 힘들었겠다. 정말 고생했다”라며 인정해주는 것이 낫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학교가 아닌 다른 선택이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학업중단 숙려제를 이용해 볼 수도 있다. 이 제도는 학업 중단 징후가 발견되거나 학업 중단 의사를 밝힌 학생 및 학부모에게 위(Wee)센터·클래스, 지역 청소년상담지원센터 등의 외부전문상담을 받으며 2주 이상 숙려하는 기간을 갖도록 하는 제도다. 학업 중단 이후의 상황과 다양한 진로 정보, 학교 밖 프로그램 등에 대해 안내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부모가 먼저 유연해져야 한다. ‘모든 인생은 아름답다’는 말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길이 있다. 한 가지 길, 동일한 방식의 삶이 도리어 자연스럽지 않다. 어떤 쪽의 선택이든, 결정을 했다면 걱정과 염려의 시선보다는 사랑과 신뢰의 눈으로 아이를 바라봐주는 게 필요하다.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