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의 평가 및 치료 - 청소년기 자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이며, 특히 청소년기에서는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한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 자살은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심각한 사회 문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자살은 일회적이고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만성적으로 진행되며, 청소년의 자살행동은 유전적, 생물학적, 인지행동적, 정서적, 환경적인 요소들이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는 문제이다. 사춘기 이전에는 실제 자살률이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이르면 우울증 유병률이 증가하고, 급격하게 발달 및 성장이 일어나면서 자살률은 크게 늘어난다. 청소년기는 발달학적으로는 자아정체성 형성과 부모와 심리적 독립이라는 중대한 인생 과제를 이루어야 하는데, 이 과정 중에 부모와의 갈등 및 내적 갈등이 심해지고, 외적으로는 학업, 친구관계, 왕따, 학교 폭력 등 과중한 스트레스가 있을 시기이다. 청소년기 자살에는 여러 위험 요소가 관여한다. 우울증, 공격-충동성, 절망감은 자살과 관련 있는 대표적인 병리이며, 과거 자살 시도는 가장 강력한 자살의 위험인자이다. 그 외에도 기분장애, 약물 남용, 대인관계 및 문제해결의 어려움, 자살 행동의 가족력과 유전적 요인, 부모의 정신질환과 부모의 이혼, 이성문제, 왕따, 범법 행위, 훈육을 견디는 능력, 학대 경험, 모방 자살 등이 있다. 반면에 청소년 자살의 보호 요인으로는 종교적 믿음, 스트레스 대처능력, 성공적인 학업 성취도, 가족들의 지지 및 연결 정도, 자살 예방을 위한 사회 안전망 구축 등을 들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청소년의 자살 사고 및 자살 시도는 치료 가능한 정신적 질환이며 특히 우울증과 같은 주요 위험인자는 좋은 치료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자살의 위험성이 높은 청소년들에게서 자살에 대한 적절한 평가와 치료는 잘 시행되지 않는 편이다. 이는 부모들이 자녀의 문제를 잘 인식하지 못하거나 과소 평가하기 쉬우며, 정신과 치료에 대한 거부감이나 부정적인 인식 때문이다.
자살 행동의 위험 요소와 평가 자살의 가능성이 높거나 혹은 자살 사고를 가지고 있는 청소년을 찾아내는 것이 예방의 첫 걸음이다. 청소년에서는 특히 식사와 수면 습관의 변화, 친구나 가족 그리고 일상적인 활동을 멀리하는 것, 약물과 알코올 남용, 외모에 대해 평소와 달리 신경을 쓰지 않는 것, 뚜렷한 성격의 변화, 지속적인 권태감, 집중력 저하, 또는 학업 성적의 저하, 복통, 두통, 피로 등 정서와 관련되어 나타나는 신체증상이 잦음, 즐거운 활동에 대한 흥미의 상실 등이 보일 때 자살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자살의 위험성이 의심되는 청소년에게는 위험 요인 및 자살 의도에 대해 직접적으로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남성인 경우에 자살위험이 의심된다면 더욱 적극적인 치료적 중재를 시작하도록 해야 한다. 자살에 대한 평가는 크게 5가지 영역에 대해 시행함이 좋다. 1) 자살의 의도 및 동기의 파악 2) 현재 및 과거 정신질환 유무 3) 절망감, 사회기술 부족 등을 포함하는 개인의 심리적 특성 4) 부모의 정신질환, 부부 불화 등 가정 및 환경적 요인 5) 친구와의 다툼, 왕따 등 최근의 생활사건 혹은 스트레스. 자살 시도를 했던 청소년과의 면담에서는 다음 부분을 점검해야 한다. 자살 시도에 선행했던 사건, 자살 의지의 정도와 그 이유, 현재 처해져 있는 문제, 정신질환의 존재와 그 특성, 가족 및 개인력, 과거 정신질환 혹은 자살 시도, 적응을 위한 지지 체계, 자살 재시도의 위험도, 주위 사람과 가족들의 태도 등이다. 자살 시도로 응급실이나 병원을 방문할 정도로 심한 청소년에서는 입원치료도 고려해야 하는데 입원치료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주요 우울증, 알코올 중독을 포함한 약물 남용, 양극성 장애, 심한 공격성, 과거 자살 시도, 과거 정신과 치료를 거부한 경우 2) 강한 자살 생각을 갖는 경우, 자살에 대해 강한 의지를 나타내거나 혹은 치명적인 자살 시도를 했던 경우 3) 가정 내 학대를 경험했거나, 심한 부모의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 그리고 가족들이 환자를 보호 관찰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한 경우 등이다.
자살 청소년의 치료적 개입 자살 청소년의 치료는 의학적 처치, 입원 여부의 결정, 위기 개입 치료, 그리고 자살 사고 및 위험성을 감소시키기 위한 장기 전략이 포함된다.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가능한 한 빨리 가족에게 알려야 하고, 평가 및 치료의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또한 무관심, 적대감, 소홀과 같은 가족 내 요소들도 환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이를 평가하며 치료에 반영해야 한다. 자살 위험도가 높은 청소년에게는 자살하지 않겠다는 약속("no-suicide contract")을 하며, 치료에 대한 순응도를 높이도록 한다. 한 조사에서는 자살을 시도한 청소년들의 약 절반만이 1회 외래방문을 할 뿐이고, 약 3분의 1만이 3번 정도 외래를 방문한다. 치료의 불응은 향후 더 심각한 정신 병리, 더 강한 자살 의지, 더 혼란된 가족 관계, 자살의 재시도 등과 연관되므로 치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음 방안들을 적극 활용한다. 1) 평가와 치료의 연속성을 유지한다 2) 어떤 치료를 받을 것인지 분명하게 설명하고 다짐받는다 3) 다음 번 예약시간을 명확하게 해주고 예약 시간 전날 전화로 상기 시켜준다 4) 가족, 교사 등을 치료에 참여시킨다.
1. 심리사회적 접근들 1) 인지 치료(cognitive therapy) 환자의 절망감과 자살 생각의 감소, 외래 치료의 순응도 증진, 우울증의 재발 감소 등의 효과를 인지치료를 통해 얻을 수 있다. 감정 일지 쓰기를 통해 부정적 자동사고(automatic thoughts)를 점검하고, 새로운 것을 함께 해보거나, 관심을 분산시키거나, 스스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함으로써 부정적 인지 왜곡을 줄여나갈 수 있다.
2) 사회기술훈련(social skill training) 자살 시도 청소년들에서 심각한 대인관계 수행상의 어려움을 흔히 볼 수 있다. 사회적 행동에 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알려주고, 모델링하고, 목표 기술을 행동적으로 보여주고, 수행에 대한 평가를 한다. 적절한 주장과 타협, 긍정적인 또는 부정적인 감정의 적절한 표현, 가족이나 동료로부터 도움을 청하는 방법 등이 목표로 제시된다.
3) 문제해결 기술훈련(problem-solving skills training) 문제 인식, 대안 제시, 결과 생각해 보기, 결정 등 일반적인 기술들을 통해서 문제에 대한 좀 더 유연한 접근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4) 감정조절훈련(affect regulation) 지나친 적개심이나 공격성, 예민함 등이 자살자들의 주요 양상 중에 하나이다. 청소년들은 성인에 비해 화가 나거나 흥분했을 때 충동적으로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조절 훈련의 기법으로 적개심과 공격성을 감소시키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을 증진시키며,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화가 나거나 흥분했다는 것을 깨닫도록 가르친다. 점진적인 근육이완 훈련, 복식호흡, 분노조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등이 포함된다.
5) 가족치료(family-based treatment) 자살 위험 청소년의 치료에서 가족의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 가족의 역할, 양육 기술, 자살, 청소년기의 특성, 정신질환에 대한 정보와 교육을 제공하여 위기 청소년들에게 적절한 지지적인 환경을 제공하며 지속적인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부모-자녀관계의 왜곡된 의사소통을 중재하여 이런 관계를 개선시키며 가족간 적개심을 줄인다. 부모의 정신적 문제 및 알코올이나 약물문제가 있다면 이를 치료한다. 2. 약물 치료 자살 행동 자체에 대해 효과적인 약물은 없으나, 동반된 정신질환에 맞추어 약물을 사용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자살을 시도한 청소년의 약 50%는 우울증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에게는 비교적 안전한 SSRI계열의 새로운 항우울제를 투여하면 호전을 보일 수 있다. 청소년기 우울증에 적응증을 받은 약물은 fluoxetine, escitalopram이 있으며 특히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약물 치료를 일차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요 약 자살을 완벽하게 예측하고, 모든 자살을 예방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자살자는 사전에 자살의 증후나 신호를 드러내는 수가 많다. 따라서 가정이나 학교에서 그들의 증후나 신호에 대해 민감하게 대처할 수만 있다면 자살을 예방하거나 감소시킬 수 있다. 또한 자살의 위험성이 높은 청소년들을 선별하여 그 위험도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개개인의 정도에 따라 인지행동치료, 약물치료, 그리고 가족개입과 같은 다양한 치료를 시도할 수 있다. 아울러 자살 시도 후 재시도의 비율은 매우 높고, 특히 첫 시도 후 3개월 이내가 가장 위험하다는 점에서 자살 시도자들의 효과적인 관찰 및 중재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생들의 자살을 질환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인 대처로 접근하는 식으로 우리 모두의 관점을 바꿀 필요가 지대하다.
전덕인, 홍현주 한림의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