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맘, 홀로서기 막아… 필요할때만 돕는 ‘빗자루맘’ 돼야
“이게 위원회가 열릴 만한 일인지…. 애들끼리 충분히 이야기해서 풀 문제 같은데….”
중학교 교사인 정모 씨(38)는 최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소집된 것을 놓고 이렇게 얘기했다. 피해 여학생 A 양(14) 부모의 주장은 “아이가 집단 따돌림을 당해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으니 가해자들을 모두 처벌해 달라”는 것이었다. 진상조사 결과 아이들 간에 때리거나 욕을 한 일은 없었다. 다만 학년이 바뀌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A 양을 뺀 것이 발단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본인만 빠진 대화방이 있다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를 따돌린다”며 집에서 눈물을 터뜨리자 A 양 부모는 위원회를 열어 사실관계를 확인해 달라고 항의했다.
전문가들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어울리며 소통하는 사이였다면 이렇게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 어른이 ::
어른과 어린이를 합친 신조어. 행동이나 말투는 어른 뺨치게 조숙하지만 속은 여물지 않은 아동·청소년을 일컫는다.
○ 속 빈 ‘어른이’를 키우는 부모
어른을 따라 하면서 행동이나 말투, 현실감각 습득 시점이 과거보다 빨라진 우리 어린이들은 그에 걸맞게 ‘속’도 영글고 있을까. 본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아동·청소년 512명(초등학교 4∼5학년 260명, 중학생 252명)을 조사해보니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아이들 479명 중 52.8%는 “얼굴을 직접 보며 대화하는 것보다 카카오톡 등 문자메시지가 편하다”고 답변했다. 19.6%는 “스마트폰이 있다면 하루 이상 아무와도 만나거나 대화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세상 모든 곳과 인터넷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스마트폰으로 인해 오히려 대면관계나 직접적인 소통은 약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어른이’들이 사회성이 발달하지 못하고 문제해결 능력이 떨어지는 이유다.
이제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은 “자녀가 한두 명밖에 없어 부모들 딴에는 완벽한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하는데 오히려 이게 문제가 된다”고 설명했다. 기성세대는 형제, 친구들과 어울리며 다투고 화해하며 컸다. 자의든 타의든 서로 소통하며 문제해결 능력을 서서히 갖췄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부모들의 과잉 보호에 더해 스마트폰 속에 갇혀 살다보니 ‘혼자만의 세계’에 사로잡혀 성장기에 중요한 사회성을 잃어가고 있다.
유미숙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지혜를 배워가며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스마트폰과 부모의 과보호 탓에 지금 속 빈 강정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단하게 자신을 성숙시켜 나가는 과정이 없다보니 작은 좌절에도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 ‘빗자루형 부모’가 돼라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독립적인 자아를 키워주는 2016년형 이상적인 부모상은 무엇일까. 홍득표 인하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세대 차이는 엄연히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소통이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미향 남서울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디지털 최첨단 지식사회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아이를 통제할 경우 대화 자체가 단절된다”고 말했다. 그 대신 그들만의 스마트폰 소통을 지켜보면서 서서히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SNS로 아이들과 소통을 시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전문가들은 “아이가 내면까지 성숙할 수 있도록 하려면 부모가 빗자루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평소에는 들지 않지만 청소가 필요할 때 긴요한 빗자루처럼 ‘빗자루형 부모’는 아이가 극복할 수 없는 큰 장애물에 맞닥뜨렸을 때만 살짝 빗자루로 청소하듯 거들어주는 부모를 뜻한다. 부모가 판단해 아이를 필요한 곳에 헬리콥터처럼 이동시키는 ‘헬리콥터 맘’이나 호랑이처럼 이끌어 시험 성적을 높이는 ‘타이거 맘’과도 다르다.
이동순 한국부모교육센터 소장은 “아이들이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나 위험한 경우,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에만 빗자루를 들라”고 조언했다. 빗자루형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버지는 학업 스트레스에 내몰린 요즘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야외활동 파트너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전호석 씨(48)는 한 달에 한 번은 아들 상우 군(15)과 야외로 나간다. 전 씨가 회장으로 있는 ‘아버지회’ 회원들은 아이들과 축구, 농구, 등산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숨쉴 틈’을 준다. 전 씨는 ‘메신저 대화’에만 빠져드는 아들이 걱정돼 퇴근 후에는 30분씩 얼굴을 맞대고 가벼운 대화도 주고받는다.
서울 광진구 광남초등학교에 있는 아버지회도 주기적으로 캠핑 행사를 연다. 다양한 아버지상을 보며 아이들은 인간관계의 시야를 넓히게 된다. 박용욱 광남초교 아버지회 회장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모른 척하던 아이들이 언젠가부터 ‘삼촌’이라 부르며 정답게 인사하더라”며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아이들은 결국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노지현 isityou@donga.com, 김재형 기자